조정에서의 노론의 감시 속에서 겨우 묵을 거처를 마련한 약용은 간신히 주막집 주인의 배려로 기거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차츰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여러 인사들의 배려로 다산초당을 지어 기거하며 방대한 저서를 남긴다.
1권이 정약용 가문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고 그로 인해 풍비박산이 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2권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그렸다. 연두색 머리처네, 애정하는 제자 황상, 혜장 스님, 초의와의 우정, 흑산도에 있을 형님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아버님을 이제 풀어달라는 아들의 상소도 물거품이 되고, 아들이 이제는 적에게 굽히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조언을 다산은 진리 아닌 것을 추종하며 이익을 얻는 것은 결국 해를 입는 것과 같다며 거부했다. 정약용은 결국 강진에 유배된 지 18년째, 불혹의 나이에 떠났다가 예순을 앞두고 고향 두물머리에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 땅 아내와 식솔들은 자신만큼 힘든 삶을 살았음을 눈으로 본다.
정약용이 한때 천주교 신자였지만 천주교가 조선의 많은 것을 부정하고 있고,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문제는 불교든 유학이든 천주교든 종교를 섬기는 삶은 자신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다시 학문과 사람에 정진하는 삶을 살려 한다. 천주교로 인해 가족이 멸족의 위기에 놓인 상태에서 언제라도 자신을 엮어 처형할 수도 있는 조성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더욱 천주교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대상이었다. 죽음 앞에서 이벽과 만나 새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는 장면은 정약용이 학문을 통해 정진하고 저술하면서도 끝내 천주학에 탐닉하지 못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듯도 했다.
”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는 부처를 배우고, 공자님 맹자 님에게서는 어짊과 예를 배우지만, 탁옹 선생에게서는 사람을 배웁니다. 탁옹 선생을 뵌 뒤부터 저의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p287
진리를 버리고 이익을 취하는 삶을 끝내 거부하고 언제나 한 쪽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 다산 정약용에게서 사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