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2 - 폭발과 이행의 시대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2
역사돋보기 이영 지음 / 북스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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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갈등사 2권은 변화보다 현상유지를 통한 기득권 유지, 그로인한 무신정변이 있은 3단계 폭발의 시대와 원나라 간섭기인 4단계 이행의 시대를 다룬다.

 

고려 18대왕 의종은 문신우대와 주색잡기와 파티로 나날을 보냈는데, 그런가운데 무신들은 경호업무의 고충에도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고, 그 골은 깊어져 결국 11708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된다. ‘문관의 관을 쓴자는 비로 서리라 할지라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려라라는 지시처럼 문신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19대왕 명종을 허수아비로 앉히고 실권은 정중부, 이의방, 이고가 같고 있었다.

 

무신정권이 수립되고 고려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문벌 귀족의 폐단이 축적되어 사회가 부패하고 있었던 것도 맞다. 그래서 터진 무신정변으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 기대한 사람도 많았건만, 지배층의 출신만 다를 뿐 근본적인 부패함은 그대로 이어졌다. 해결되지 않은 사회 기저의 폐단에 정치의 무질서함까지 더해져 고려는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p.38

 

이런 무신정권은 무려 100년이나 이어졌고, 몽골의 침입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24대 왕 원종에 이르러 무신정권의 막을 내리게된다. 하지만 기나긴 대몽항쟁기로 자주성을 잃고 원의 압박과 수탈을 견뎌야 했다.

 

원나라는 고려를 멸망시키진 않았지만, 부속시켰기에 원나라와 고려 사이의 명확한 수직 관계를 위해 고려 왕에게 묘호를 허락하지 않았다. 묘호는 오직 원나라 황제에게만 허용됐다. 충렬왕부터 고려의 왕이 원나라 황실 공주와 혼인하는 풍습이 생기면서 고려는 공식적으로 원나라의 사위국가, 즉 부마국이었기에 고려 왕은 ‘~으로 끝나는 묘호가 아닌, 시호를 써야 했으며, 시호에는 원나라에 충성하라는 의미에서 반드시 자를 넣어야했다. p149

 

원나라는 내정간섭뿐 아니라 거듭 공녀를 요구했는데, 1274년부터 80년간 총 50여차례 공녀를 바쳐야했다.

 

기황후

무관 가문의 딸이었던 그녀는 1333년 공녀로 차출되어 원나라로 끌려갔다. 그녀를 눈여겨본 고려인 환관 고용보가 황제의 차를 따르게 했고, 황제의 눈에들어 1338년 아들을 낳고 제2황비가 된다. 이는 고려인이 황후가 될 수 없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기황후는 고용보를 고려로 복귀시키고 공녀와 공물을 차출해갔으며, 결국 고려는 친원파 권문세족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1349년 원 혜종과 기황후는 강릉대군 왕기를 노국대장공주와 혼인시키고 고려 31대 왕으로 삼는데 그가 바로 공민왕이다.

 

읽다보니 고려의 건국때와 공민왕 이후 이성계의 등장과 연이은 고려말의 허수아비왕들의 이야기들은 많이 접한 이야기였지만, 그밖의 많은 고려사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왕건 이후의 왕권다툼과 무신정권 그리고 원나라간섭기의 이야기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물론 고려때도 산만한 정치와 다르게 불교를 비롯한 문화들의 발전사항이 있지만 드라마처럼 펼처지는 이야깃거리들이 역사드라마를 보는듯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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