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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양장) ㅣ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5
에밀리 브론테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3년 9월
평점 :

이 작품은 영화로 나오거나 축약된 줄거리형식으로 나온 이야기를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격정적 사랑과 그로 인한 한 남자의 복수라는 형식을 취한다.
읽으면서 나는 ‘롤리타’가 연상의 남자를 사랑하는 소녀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영화화 된 것처럼 이 작품도 영화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심하게 미화한 작품 이라는걸 느끼게 된다.
이사벨라가 이 책의 화자인 엘렌에게 ‘어떻게 워더링 하이츠에 살면서 인간본연의 공감능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과연 히스클리프는 인간인지 악마인지’ 묻는 편지를 쓰는데, 그만큼 히스클리프의 악행은 화가 치밀만큼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캐서린도 이에 못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영화화한 ‘폭품의 언덕’은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설정했는데, 작품속에서 ‘비록 악마 한테서 온 것처럼 시커멓다’거나 ‘걸음도 말도 뗏을 만큼 큰 아이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다’(p67), 또는 ‘아버지는 중국황제이고 어머니는 인도 여왕’(p103) 이었을 거라며 그를 달래던 엘렌의 표현을 보면 히스클리프가 백인은 아니었겠지만 흑인도 아니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언쇼가문인 힌들리와 캐서린 남매의 집에 어느날 히스클리프를 언쇼씨가 데려오면서 불씨는 시작된다. 자신을 보호하던 언쇼씨가 죽고 난 후 히스클리프는 유일하게 자신의 친구가 되어준 캐서린만을 사랑하게 되는데, 캐서린은 린턴가의 에드거의 청혼에 응답하면서 결혼을 하게된다. 3년 후 신사가 되어 온 히스클리프는 대놓고 캐서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에드거를 괴롭히더니 에드거의 누이인 이사벨라와 야반도주하여 결혼하며 강제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는 에드거를 괴롭히고, 더 나아가 그 집안의 재산을 노린 것이었고, 이사벨라에게는 입에 담지 못할 욕과 하대로 이사벨라에게까지 악행을 저지른다.
자신을 경멸하던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리를 도박에 빠지게 하고, 어린 힌들리의 어린 아들 헤어턴마저 동물처럼 자라게 만드는 것은 물론 에드거와 이사벨라라는 선한 두 인물에게 마저 큰 상처를 주고, 자신의 아들과 캐서린의 딸을 결혼시키는등 그의 복수(?)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집착은 애정이었을까? 애정이었다고 굳이 우겨도 지금의 사회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삐뚤어진 광기라는 점과 캐서린의 극강의 이기주의도 한몫을 하는 터에 읽기가 참으로 화가 나는 지경이었지만, 문학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캐릭터라는 점과 연쇼집안의 두 남매와 린턴가의 두 남매 사이에서 두 집안을 암울한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소굴로 만드는데 일조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이 겹치며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된다.
애초에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히스클리프 대신 에드거를 선택했던 캐서린은 자기중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자신과 히스클리프가 진정한 피해자인듯한 행동이 예전에 읽었을 때의 [퐁풍의 언덕]에서 느껴보지 못한 두 주인공의 심한 자기애를 보게 된다.
“이제 나도 참는 데는 신물이 나요. 되받지만 않는다면야 복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배반과 폭력은 양 끝에 날이 달린 창이라 적보다 나를 더 기이 찌르기 십상이거든요”
이사벨라의 말중에서 p305
한때 사랑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이사벨라를 통해 작가는 결코 히스클리프의 복수의 행위가 결코 복수가 아닌 자신이 더 상처입는 행위였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에드거와 힌들리가 같은 처지지만 다르게 행동했고, 히스클리프가 헤어턴을 자신의 처지처럼 키우지만 결과가 다른 것은 타고난 본성이 더 인간 자체를 지배한다고 작가는 믿은 것이 아닐까?
나는 운 좋게도 언니인 샤롯브론테의 [제인에어], 둘째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그리고 막내인 앤 브론테가 [애그니스 그레이]를 발표하며 1840년대 자매 여성작가들로 잘 알려진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
작품활동과 명성까지 얻었던 샤롯 브론테에 비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어두운 이야기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폭풍의 언덕]은 인간의 본성은 타고 나는 것인지, 집안 환경의 영향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