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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밥상 - 우리의 밥상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김상보 지음 / 가람기획 / 2023년 7월
평점 :

알랑드 보통의 [사유식탁]을 읽고 음식을 차린다는 것과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 또 음식의 재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었다.
이 책은 1부인 음식문화와 2부인 찬품각론으로 나뉜다. 1부의 전문용어와 다양한 표들 때문에 논문을 읽는 것처럼 버겁고 책을 다 이해하는것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각 반찬들과 음식들의 유래와 조선시대의 식생활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1392년 태조가 개국할 당시에도 쌀, 소금, 건어물, 젓갈, 콩, 장등은 필수식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음식 요리의 간을 맞추는 용도로 많이 쓰이는 젓갈은 밥상에 오르는 반찬의 한 종류였다.
서구화된 식사 후에나 알았을 것 같은 버터는 국가 공납물품이었으며 유목을 주업으로 하던 황해도와 평안도 등지에서 제조했고 이들을 수유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국음식의 필수 재료로 여겨지는 고추장이 고추장으로 불린 시기는 1700년경이라고 하는데, 고추가 처음 만초라고 불렸으며 이는 ‘남쪽 오랑캐의 초’라는 뜻으로 고추가 중국의 남만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이외에도 지금도 대표과일롤 불리는 참외는 조선시대 여름의 주식으로 불릴만큼 많이 재배되고 소비되었다고 한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조선시대 외식문화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설렁탕, 곰탕등의 음식이 많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육은 물론 소고기, 돼지고기등 육류를 많이 먹었고 그만큼 도축장이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경성에 일본 요리집이 생긴 것이 1885년이고 이때 궁중음식이 요릿집 음식이 되었다. 처음 게이샤를 두어 운영하던 요리집은 1909년 무렵 관기제도가 폐지 되면서 기생을 두는 요리집이 번성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대식가이고, 조선시대 때부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덩치가 크고 먹는 양이 많았다.실제 조선의 최상층부는 1일 7식을 했고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도 1일 7식을 접대했다.
1일 7식의 경우는 아침 점심 저녁이외에 중간에 술상을 곁들인 국수인 다담을 먹었다.
조선시대 아침에는 밥 대신 죽을 먹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때 반찬은 밥을 먹을 때와 같았다고 한다. 점심이라는 말은 원래 소식을 뜻하는 단어인데 우리나라에 와서 ‘점심’이라 부르며 낮에 먹는 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식생활이 많이 서구화 되었다 하더라도 한식을 대표하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의 개념은 조선시대 음식문화의 기본이었던것같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2000년 이상 밥과 국이 세트가 되는 식생활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