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해적이자 영웅인 드레이크 외에도 토마스 카벤디쉬, 에드워드 펜톤, 존 치들리, 리처드 호킨스 경등이 ‘여왕 폐하의 해적’으로 명성을 날리며 모험과 탐험을 했다.
18-19세기 세계 경제에 군림하기 전인 16세기 영국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해적 머니였다.
최대 피해국은 스페인이었는데, 주로 금. 은을 포함한 다양한 물품을 약탁당했다.
영국은 당시 스페인에 비해 열세에 있었다. 대국인 스페인은 범선과 군대의 규모도 월등했으나, 영국은 화공을 이용한 게릴라전, 현재까지 명성이 자자한 스파이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동인도 회사인 해적을 이용한 모험 상인을 이용하여 18-19세기를 주름잡는 대국이 되어간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비서관인 월싱엄에 의해 스파이 조직이 탄생했고,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을 발굴해 스파이로 키웠다고 알려진다.
후추, 시나몬, 생강, 고수... 지금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향신료는 당시 막대한 부를 가져오는 무역이었다. 100년도 전부터 향신료 시장을 독점하던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가 뛰어들었고, 여왕으로부터 독점권을 받은 동인도 회사가 270여 년간 향신료 무역에 주력했다.
그 뒤를 이어 커피와 홍차 무역은 나라의 문화마저 바꿔놓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른 향신료와 마찬가지로 설탕은 의약품으로서 인정받기도 했는데, 영국이 노예무역에 착수한 것은 설탕 무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년 내내 기후가 따뜻한 지역에 타는듯한 뙤약볕에서 종일 노동한 노예의 필요성이 그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