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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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루이즈 글릭이 받았는데, 1968년 [맏이]로 등단했고, [야생 붓꽃]은 1993년 발표한 6번째 시집이다.

총 54편의 비교적 짧은 시들이 실려있는데, 이름이 생소한 꽃들이 대부분이고, 아침기도, 저녁기도 등 같은 제목들의 시들이 많이 보인다.

[야생 붓꽃]의 전체 시들의 공통점을 '목소리'인 것 같다. 야생 꽃들, 풀등, 나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면 공감이 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한다.

시는 짧지만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외국 시들이 그렇지만, 모국어로 느끼는 문장이나 어휘의 느낌을 제외하고 전체의 느낌으로 시를 읽게 되면서 시의 맛이 반감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작은 책자로 이루어진 번역자인 정은귀님이 시를 번역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도 느껴지는데, '예쁘다, 별로다, 심드렁하게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한 번 더 집중해서 읽어보려 했다. 자연과 꽃에 대한 시를 썼던 어떤 시인보다 루이즈 글릭이 진정한 꽃들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는 꽃들이 아닌 꽃들이 우리에게, 자연에게 말하는 말들이라 더 진실한 그들의 목소리인 듯 느껴진다.


 

이 시집을 읽으며 자연과 꽃, 풀들에게 미안해졌다고 한 이유는 시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인간이 분류하고 좋고 나쁜 것에 대한 명확한 시선을 갖고 있는 자체에 대해 한낮 잡초로 분류된 많은 풀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시들을 읽을 때이다. 이 시집에는 자연과 인간과 신이라는 큰 목소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서로에게 말하는 대화가 아니어서 어쩌면 공허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소통이라는 것이 말로 푸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뭔가가

엉망이야, 엉망이야 외치며

반갑지 않은 세계로 들어오네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나 끔찍이 싫어한다면

내게 애써 이름 붙여 주시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언어에

비방하는 말이 하나 더

필요한가요.

한 부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또 다른 방식

당신이나 나나 알잖아요.

하나의 신을 섬기려면

하나의 적만 있으면

된다는 걸

내가 그 적은 아닙니다.

이 화단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기 위한

하나의 핑곗거리일 뿐

실패의 작은

모범 사례죠. 당신 소중한 꽃들 중 하나가

여기서 거의 매일 죽고 있어서

당신은 쉴 짬이 없는 거요.

그 원인을 처리해야 하니, 이 말은

뭔가 남든지, 그 어떤 것도

당신 개인의 열정보다

더 질길 거라는 뜻이지요.

세상에서 그게

영원히 계속될 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왜 그걸 허락하는지, 당신은

늘 하는 걸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애도하면서 동시에 탓하는 일,

늘 함께 가는 그 두 가지요.

살아남기 위해서 당신의 찬사는

필요 없습니다. 내가 여기 먼저 있었으니,

당신이 여기 있기 전부터, 당신이

정원을 만들기 전부터 말이지요.

그리고 나는 태양과 달만 남게 되어도

또 바다, 그리고 이 드넓은 들판만 있어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들판을 만들 것입니다.

개기장풀(Witch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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