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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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까지 곤두박질쳐야 다시 위로 치솟을 수 있을까. 한동안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십대 시절이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누군가 나를 여기서 끌어올려주길 바랬던 것 같다.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같은. 그런데 그 생각은 이십대인 지금까지 따라붙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김이설의 책을 집어 들었다. 전작인 <나쁜 피>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구축해낸 자신만의 세계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끝도 없이 소름끼치는 그러한 정서들이 이번 책인 <환영>에도 고스란히 바통을 이어받는 전해오고 있다.

 

김이설의 <환영>은 카피 문구인 “현실의 어디를 움켜쥐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를 지극히 잘 표현해내고 있다. 윤영은 공무원을 준비하지만 무능력한 남편과, 아이,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엄마와, 민영, 준영까지 합해 총 다섯 명의 생계를 부양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텍스트가 시작할 때부터 그렇지는 않지만, 전반에 걸쳐 결국 그녀는 자신까지 합해 총 여섯을 건사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윤영은 시와 도의 경계를 지나 왕 사장의 백숙집에 출근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니, 과연 어쩔 수 없었을까? 매춘을 하게 되며 돈을 모으게 된다. 물가의 ‘별채’라는 공간은 한없이 부정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안으로 밀어 던져진 순간, 윤영은 모성이 아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또는 훗날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자신의 고객과의 감정을 쌓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가는 삶을 살아나간다. 생계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언젠가, <환영>이라는 텍스트를 놓고 김동인의 <감자>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이 두 편의 텍스트는 유사점이 많다.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는, 그런데 매춘을 하다 보니 그게 생계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고, 자신안의 내재되어 있던 욕정이라는 샛길로 새게 되는. 커다란 줄기만 놓고 보다면, 이 두 텍스트는 분명 유사점이 있다. 그런데, 다른 점이라면 <감자>의 주인공인 복녀는 결말에 이르러 자신 앞에 놓인 반항을 하였다면, <환영>의 주인공인 윤영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끝없는 부정이 이루어지는 그곳으로 말이다. 다시 시작이다, 라는 다짐 아닌 다짐, 결심 아닌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텍스트를 읽는 내내 나는 윤영이라는 인물의 삶이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는 가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바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내가 놓인 상황은 정말 말 그대로 복에 겨운 소리라는 결론이 나올 정도였다.

 

모성을 잃었던 윤영은 다시 잃었던 그 ‘모성’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찾아낸다. 남편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죽을 먹이며 말하는 부분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그 감정이 다시 돌아왔음을 드러낸다.

 

“걱정 마.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줄게.”(p164)

 

작년 봄에 한 번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은 <환영>이라는 텍스트는 나에게 조금의 위로, 위안을 안겨주었다. 너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그러니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만 나가라고 말이다. 결말에 이르러 나는 어느새 이 윤영이라는 인물이 온몸에 불을 끌어안으며 견뎌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이 여자. 지극히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현실적일 것만 같은 물가의 그 공간. 그리고 그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이 여자. 시와 도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이 윤영이라는 인물이 여자와 엄마라는 이름을 가르는 경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공간들은 안타깝게도 이 주인공에게 너무도 많은 영향들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끝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환영>이라는 이름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최악으로 치닫는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수긍하며 다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여자. 이 여자가 환영, 그 자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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