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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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없이 곧장 본문으로 들어간다. 오랜 만에 은희경의 책을 읽는다. 아니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다. 몇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내가 따라가지 못했던 은희경의 소설들이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태연한 인생>을 돌이켜본다. <태연한 인생>은 두 번의 시도 끝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첫 시도에서는 첫 류의 서사 부분만 읽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해 덮어버렸었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에는 그 부분이 술술 읽혀 흐름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이후 처음인 것 같다. 이 책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중반부분까지 읽고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에는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태연한 인생>이 그 뒤를 이어 내게 그러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태연한 인생>을 읽으면서 가장 내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남자 주인공인 ‘요셉’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너무나도 독특한 ‘돌아이’라고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고 내가 아는 어느 시인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고, 왠지 그 시인이라면 요셉과 같은 ‘사상’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요셉은 뭔가 독특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인물이었다. 왜 그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뚜렷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은 내가 요셉이기 때문이다. 남이 잘나가는 것은 죽어도 못보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바꾸기는 물론, 자신의 말보다는 남의 말을 인용하여 입을 연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무척이나 냉소적인 사람. 그런 내가 바로 요셉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요셉’과 같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요셉에게 시선이 가고 그에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태연한 인생>을 정리하자면 연애소설로 정리해보려 한다. 다만 달달하기만 연애소설은 아니다. 쓴맛이 있고 떫은맛이 있는 연애소설이다. 그 맛들은 일련의 에피소드들로 인해 촘촘히 배열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 수많은 ‘연애’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듯, 진정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내가 이 텍스트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다시 곱씹어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곳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이 과잉되지, 부족하지도 않게 말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이 문장이었다.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었다.”(p72)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이 문장이 나를 가장 <태연한 인생>이라는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극장 안에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던 류. 고통과 고독, 그리고 서사로 표현할 수 있는 <태연한 인생>이라는 텍스트를 가장 잘 표현해놓은 문장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만약 이 책에 카피를 뽑았다면 이 문장을 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우습게도 해보기도 했다.

 

 

<태연한 인생>은 유동치는 서사가 있다거나 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저 일정 부분을 뚝 떼어서 그 부분에 대해 묘사하는 소설이라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대신 그 부분을 설렁설렁 묘사하는 게 아닌, 오감을 이용해 묘사해낸다. 그래서 처음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곧바로 포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태연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주는 가장 명백한 전개방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과연 오감 중에 단 한가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그 누구도 그렇다, 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감을 이용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으로 이어진 <태연한 인생>은 제목 그대로 인생이 태연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누구나 느낄 가장 첫 번째 감상일 것이다.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읽은 은희경 작품이었는데, 무척이나 좋았다. 단숨에 읽을 줄은 정말 나 자신도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고통과 고독, 서사라는 이 세 가지에 대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가을, 누구나 읽어야 할 텍스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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