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실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거품을 사랑한다 그들의 창고엔 끊임없는 식욕을 가진 황금식탁이 있고 폐수를 배설하는 도시의 수족관에는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검은 물고기들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결핍의 계절이 돌아오면 집을 버리는 족속들, 거품이 자라는 곳에 페허가 자란다 낙타도 없이 사막을 여행하는 도시의 여행자가 몸살을 앓는다
2.
외로운 밤에 별이 뜨면 달과 구름과 바람을 부르는 초원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포도나무 덩쿨에서 밀주를 담고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사과나무를 심는다 정원에는 달빛이 떨어지는 우물에서 꿈을 길어 올리는 어린왕자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순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사막의 낙타와 함께 먼 여행을 준비한다
3.
수채화같은 그녀가 걸어 오고 있었다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그녀가 갈길을 재촉하고 바다로 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물새도 없는 바다, 황량한 겨울의 백사장 구석에서 화토장 하나가 뒹굴고 우리의 오늘은 밤을 만나러 이름도 모르는 도시의 새들을 만나러 맥주와 시와 음악이 있는 도시로 몰려가고 있었다 날개 꺽인 새들은 주섬주섬 자신이 주워 온 먹이를 내 놓고는 제가 머물던 둥지로 돌아가기 위해 이별을 고하고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이국의 향기에 취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지구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더운 내 손의 감촉이 전해지면서 먼 옛날 동화에 나오는 님프처럼 우리의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 류시화 시인의 여행기 '지구별 여행자'에서 인용

<몽상의 시학>
사막을 여행하는 도시의 여행자가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의 수족관으로 은유되는 현대문명은 끈임없는 식욕을 가진 황금식탁이 있고 폐수를 배설하는 공장이 있다.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검은 물고기들은 수족관의 병리적 생태계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도시의 여행자가 낙타도 없이 사막을 여행하고 있다고, 사막화된 산업사회의 풍경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운 밤에 별이 뜨면 달과 구름과 바람을 부르는 초원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 곳, 그 곳에서는 포도나무 덩쿨에서 밀주를 담고 밤이 되면 정원에서는 달빛이 떨어지는 우물에서 꿈을 길어 올린다. 자신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문명과 자연의 이항 대립을 넘어 도시의 서정과 자연이 만나는 새로운 지구별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서 수채화같은 그녀를 만나고 물새도 없는 바다를 보기도 하고 맥주와 시와 음악이 있는 낭만적인 도시도 구경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순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신화적 사유가 있는 곳에서 꿈을 길어 올리는 어린왕자와 물새도 없는 바다의 수채화같은 그녀가 만나 맥주와 시와 음악이 있는 곳에서 도시적 서정과 전원적 풍경은 두 손을 따뜻하게 잡으면서 마침내 화해를 한다. 문명과 자연의 대립 관계를 넘어 도시 속의 전원, 도시 속의 자연을 품고 있는 생태적인 도시 문명으로 지양되면서 먼 옛날 동화에 나오는 님프처럼,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새로운 지구별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