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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에 뜬구름이 나타나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산속의 노승이 도술을 부리는 구름이라는 말도 있고 미국에서 

보낸 위성 구름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족집게 무당

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뭉게구름의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급기야 뜬구름은 뉴스특보에 나오기 시작했고 

먹구름으로 변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사나운 폭우로 변할 수도 있으

니 외출할 때는 단단히 준비하고 주의를 할 것을 국민에게 알렸습니

다.


뜬구름을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가 제

작되었습니다. 가수들은 뜬구름을 노래하고 기자들은 뜬구름의 일

거수일투족을 취재하였습니다. 뜬구름이 나타나면 나타났다고 야단

법석이고 뜬구름이 사라지면 사라졌다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촛불

시위가 일어난 것도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도 뜬구름 때문일 것이

라는 추측도 나돌았습니다. 그때마다 주가는 폭락하였고 주식시장

에는 뜬구름 장세가 형성되었습니다.


경제가 불안해지자 뜬구름을 잡기 위해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하였습니다. 작은 마을에 경찰을 주둔시켰고 군부대에서는 헬기를 동

원하였습니다. CNN 뉴스에서는 요코스카항에 정박하고 있는 미 7함

대가 뜬구름 쪽으로 항로를 변경하였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도 

뜬구름이 잡히지 않자 미모의 여배우를 동원하여 미인계를 써보자는 

작전도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구름이 전 국민이 보고 있는 뉴

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뜬구름은 뜬구름일 뿐입니다."





<몽상의 시학>


화자는 뜬구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뜬구름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하고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침내 세상의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뜬구름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한다. 촛불 시위가 일어난 것도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도 뜬구름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돈다. 경제가 불안해지자 뜬구름을 잡기 위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경찰이 주둔되고 군부대가 헬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요코스카 항에 있는 미 7함대가 뜬구름쪽으로 항로를 변경하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도 뜬구름이 잡히지 않자 미모의 여배우를 동원하는 미인계도 써본다.


이 시는 뜬구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사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을 마치 나비효과처럼 처음에는 작은마을에서의 족집게 무당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우연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증폭되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뜬구름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뜬구름을 잡기 위해 국가가 움직이고 국제사회까지 움직이는 상상계적 사건의 묘사가 압권이다. 화자는 전 국민이 보고 있는 뉴스에서 


"뜬구름은 뜬구름일뿐이다."


라고 사건의 의미를 짚어보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나비 효과처럼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국가가 움직이고 국제사회까지 움직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을 시적자아로서의 뜬구름은 뜬구름일뿐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이러한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이 있다. 우연한 하나의 사건이 수많은 욕망이 결합하고 연쇄작용을 하면 하나의 사건에 수많은 사건이 결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작은 마을의 족집게 무당의 관심사에 지나지 않는 사건이 국가적 사건이 되고 국제사회까지 주목하는 사건으로 확대되는 일이 벌어질 수 도 있다. 사건이 사건을 부르고 욕망이 욕망을 부르는 사건이 되어 국가적 사건이나 국제적 사건으로까지 사건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뜬구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상천외의 사건들이 시적 상상력과 만나서 한편의 풍자와 해학으로 사건 중심의 재미있는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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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철장 그물 속의 새처럼 살아야 하는

가여운 내 영혼에 낯선 거리의 사람들이

엿보는 저녁 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하이얀 전등이 지친 몸으로 잠시 쉬고 있는

거리의 어느 쓸쓸한 귀퉁이에서

꿈속의 여왕, 아내의 미소를 보았다

흐릿한 시야를 사라지는 나비의 꿈..


아~ 꿈속이었을까

세월은 흘러 낙양의 외로운 새가 되어

길 떠난 나그네처럼 살았으니

 

 

새는 자유를 얻어 바람같이 허공을 나를 때

내 영혼의 아내, 꿈속의 여왕은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내 곁에 맴도니

아~ 나는 늙으나 그대는 아직 청춘이구나.



<몽상의 시학>


언제나 철장 그물 속에 사는 가여운 내영혼이라고 화자는 고백하고 있다. 시적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자신이 어떤 형벌에 갇혀 사는 수인임을 진술하고 있다. 과연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낙양의 외로운 새가 되어 나그네처럼 떠돌았을까? 아마도 화자는 천하를 훔치려다 발각되어 고향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는 나그네의 신세가 된 것은 아닐까? 


시적 화자로 나오는 나그네는 세상속으로 잠행하다가 하이얀 전등이 지친 몸으로 잠시 쉬고 있는 거리의 어느 쓸쓸한 귀퉁이에서 꿈속의 여왕, 아내의 미소를 본다. 나비가 나를 꿈꾸는지 내가 나비를 꿈꾸는지, 장자의 호접몽에 나오는 신화적 사유가 시적장치로써 돋보인다.


꿈속에서 세월은 흘러 시인은 낙양의 외로운 새가 되어 방랑하는 음유시인이 되었으나 나그네와 함께 동행하는 꿈속의 여왕은 시들지 않는 꽃으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나그네의 꿈속의 아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탄식한다. 세월은 흘러 자신은 늙어 백발이 되었으나 자신의 아내는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맴돌면서 애틋한 정분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만난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는 나그네의 꿈은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어딘지 모르게 슬픈 정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들판의 곡식이 익을 때면 천하를 떠도는 나그네의 묵직한 발걸음과 고단함이 베어 있는 낙양의 외로운 새는 석양의 하늘아래에서 거리를 떠도는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아직도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맴도는 꿈속의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나그네의 사랑과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시적 감동이 돋보이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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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병의 문학도, 담배 한개비에 몽환적 유희를 낳고

사물과 풍경과 침잠하는 사유는 황량한 도로를 질주하는

헤드라이트의 교차로, 사막을 유영하는 건조한 유목의 언어들

이내 쓰디 쓴 커피향과 함께 도로를 질주하며

밤마다 찾아드는 불면의 언어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처절한 사투에서 한 마리 거대한 허무주의만 낚고

세속의 사태를 교살하고 있다

거대한 물고기는 은밀한 배교자, 어둠 속에서 피는 나태의 천일야화,

퇴락을 반복하는 영겁회귀의 데카당스

질병의 문학도가 거처할 곳은 문학을 버리고, 사랑을 버리고,

영혼을 버리고 악마와 교신하는 타락한 천사의 미로, 미지를 순례하는

어둠을 낳은 빛의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 생멸하는 의식 속을

무한분열하는 회색의 언어들

커피와 끽연과 일탈과 통정하는 언어의 식민주의, 돌아서면 초라한

침묵만이 고통스럽게 반겨주는 불온한 악마





<몽상의 시학>


호모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시인은 예술활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시인 자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는 '나는 질병의 문학도'라고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담배 한개비에 몽환적 유희를 낳는 유희적 인간으로서의 문학에 탐닉하는 시적자아이기도 하다. 


쓰디 쓴 커피를 마시면서 시적자아는 황량한 도로를 질주하는 헤드라이트의 교차로를 응시하기도 하고 사막의 건조한 유목의 언어들이 있는 환상을 횡단하기도 한다. 밤마다 불면의 언어들 때문에 밤새 뒤척이기도 하면서 화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거대한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어 한마리 거대한 허무주의와 처절한 사투를 경험하고 세속의 사태와 교감하기도 한다.  


거대한 물고기는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시인의 사상이기도 하고 사유의 바다속에서 건져 올린 시인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대한 물고기는 처절한 사투의 과정에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부패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면서 이내 피냄새를 맡은 상어들에 의해 거대한 물고기의 신비한 형상은 해변에 이르러 앙상한 뼈만 남아 한마리 거대한 허무주의만 남는다. 


하여 시인은 사유의 바다에서 본 거대한 물고기의 형상을 작품으로 건져올리려고 하나 환상을 횡단하고 나면 거대한 물고기는 은밀한 배교자, 어둠 속에서 피는 천일야화, 퇴락을 반복하는 영겁회귀의 데카당스로  언제나 거대한 허무주의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런낸다.


그리하여 화자는 언어의 그물속을 빠져나가는 거대한 물고기를 하나의 사유로서 미지를 순례하는 어둠을 낳은 빛의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 생멸하는 의식 속을 무한분열하는 회색의 언어들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사유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거대한 물고기로 은유되고 있는 신비한 작품을 건져 올리려고 하지만 그러한 지난한 사유의 과정은 커피와 끽연과 일탈과 통정하는 무한분열하는 언어의 식민주의임을, 돌아서면 초라한 침묵만이 고통스럽게 반겨주는 불온한 악마와 같은 것이라고 자신의 허무주의를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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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지를 않았다

젖은 날개가 무거워서가 아니다

무한천공 자유를 비상함이

새의 눈에 가득했으나

새를 조준하는 포수의 총과 레이더가

새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둥지를 틀 시간을 기다리며

지상의 어느 버림받은 공간에서

새는 날개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꿈같은 자유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몽상의 시학>


‘디지털 판옵티콘’에 대한 우려는 국가나 기업이 축적한 방대한 개인정보가 국가나 기업, 개인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서 출발한다. 각종 개인 정보를 방대하게 수집해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특정 관리자가 다루면서 개인의 정보가 노출되고 프라이버시가 위협당하는 일종의 ‘정보감옥(information prison)’ 사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어느새 감시사회의 감시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은 감시 시스템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통제사회 앞에서 빅브라더라는 허구적 인물을 내세워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대중의 욕망과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속박하고 인간의 기본 욕구까지 통제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1 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사회가 1984년과 너무 닮아 있다. 다시말해서 '감시사회의 도래' 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CCTV, 스마트 폰, 자동차의 블랙박스, 크레딧 카드 등의 활용이 집단에 의한 개인의 감시뿐만 아니라 개인에서 개인간의 감시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하여 미셀 푸코는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한 모든 자료가 저장되는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판옵티콘의 죄수들을 감시하듯이 출산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새는 날지를 않았다

젖은 날개가 무거워서가 아니다

무한천공 자유를 비상함이

새의 눈에 가득했으나

새를 조준하는 포수의 총과 레이더가

새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화자의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새는 감시 사회의 감시체계를 의식하고 있는 익명의 대중들이면서 시인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는 날지를 않았다. 감시 사회의 감시 체계가 새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안전을 위해서라는 디지털 감시사회는 새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관리한다. 새는 무한천공 자유를 비상하고 싶으나 판옵티콘의 감시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새의 본능은 언제나 꿈같은 자유를 키우고 있다. 새는 자유를 상징하는 날개를 키우고 있다고 화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어느 버림받은 공간에서 미래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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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 위에서 그녀가 사막을 걷고 있다 

징과 장구 소리에 놀란 원혼을 달래기 위해

한바탕 진혼 굿을 벌여야

산 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몸 짓,

더 이상 이 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는

절정을 노래해야 무녀의 위엄을 자랑할 수 있는

칼 위를 걷는 여자,

굿판을 벌인 핏줄들에게서 부지런히

노잣돈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는다

집에 두고 온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이 쏟아진다

원혼의 슬픈 눈물 앞에 구겨진 지폐는 쌓이기 시작하고

슬픔의 절정,

그녀는 물 위를 걷고 있다



<몽상의 시학>


작두 위에서 사막을 걷는 여자가 있다. 시퍼런 칼날 위를 걷는 무녀는 징과 장구 소리에 놀란 원혼을 달래기 위해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한바탕 진혼 굿을 벌여야 산 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몸 짓이라고 말한다. 


무녀는 원혼들에게 더 이상 이 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는 절정을 노래해야 무녀의 위엄을 자랑할 수 있기에,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시퍼런 칼날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굿판을 벌인 핏줄들에게 부지런히 노잣돈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는다고 시적 자아는 발설하고 있다. 가냘픈 몸매를 가진 무녀가 시퍼런 칼날을 걷고 사막을 걷는 것은 아마도 집에 두고 온 아이 때문은 아닐까라고 시적 진술은 고백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칼위를 걷는 굿판을 벌이고 있는 무녀의 행위를 지극한 모성으로 형상화하고 슬픔의 의미를 증폭시키고 있다. 아이를 생각하는 지극한 모성의 눈물이 원혼의 눈물로 전이되고 원혼의 핏줄들은 가장 슬픈 원혼의 눈물에 사로잡혀 원혼의 눈물 앞에서 구겨진 지폐로 저승길 노잣돈으로 원혼을 달래는 것이다.


원혼의 슬픔을 달래는 눈물이 슬픔의 절정에 이르면 구겨진 지폐는 쌓이고 무녀는 산자의 고통과 원혼의 슬픔을 치유하는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적진술은 산 자의 고통이라는 사막의 현실을 반전시키면서 가장 슬픈 눈물로 진혼 굿은 시작되고 무녀의 위엄은 칼 위를 걷는 원혼의 슬픔이 되고, 원혼의 핏줄들의 슬픔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여자의 슬픔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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