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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낡은 지폐처럼 떠돌던 오후

다가오는 낯선 남자와 여자와 추억이 황량하여 

쓸쓸한 하루는 묘비처럼 서 있다 

아파트 17층 여자는

무료한 시선으로 베란다에서 이불을 늘고 있고 

놀이터에는 집을 나간 고양이들이 텅 빈 쓰레기통을 뒤지는 저녁

실내에는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과 먼지, 

건조한 공기와 차와 찻잔이 놓여 있고 

황사가 부는 날이면 

집집마다 굳게 닫혀 있는 문들은 침묵을 지키며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인사도 없는 도시의 여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달마다 우편함에 꽃혀있는 관리비 고지서를 들고 오던 날

생의 달콤한 것들의 외출로 

쓸쓸한 노래도 없이 

무표정한 하루가 고장난 시계처럼 흐르고 있다



<몽상의 시학>

시인은 도시의 풍경을 쓸쓸한 표정으로, 무표정으로 도시의 서정을 묘사하고 있다. 온종일 떠돌아도 낯선 사람밖에 만날 수 없는 도시의 시공간은 낡은 지폐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표정한 거리는 군중속의 고독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현대인들이 사는 거리는 익명의 거리이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도 공원의 벤치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나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모습을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더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카페에서 혼자 차 마시고, 책 보고, 공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이어폰을 끼고 카페의 음악과 상관없는 자신의 음악을 듣기도 한다.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군중 속의 고독은 쓸쓸한 하루의 묘비처럼 무표정하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가 생산한 고독한 군중은 다양한 관계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인간의 존재 양식과 멀어져 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공허하지 않게 하기 위해,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은 고독한 군중이 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다.

시인은 이러한 도시의 풍경을 황사가 부는 날이면 굳게 닫혀 있는 문들로, 관계의 단절을 상징하는 아파트의 풍경으로, 엘리베이트에서 마주치는 인사도 없는 도시의 여자들로, 우편함에 꽃혀 있는 관리비 고지서로, 무표정한 하루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고장난 시계처럼 무표정한 하루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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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신비에 취해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미칠줄만 알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울컥 쏟아지는


강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몽상의 시학>

키에르게고르는 '인간의 실존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실존은 불완전하기에 늘 시험에 빠지며 완전하지 않기에 영원의 상징인 신 앞에서는 늘 불안하다. 

까뮈의 이방인은 소설속 주인공인 뫼르소가 우연히 오전의 태양의 눈부심 때문에 아무런 이유없이 아랍인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을 통해 인간의 실존은 온갖 부조리와 역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적 자아는 세상의 신비에 취해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다 갑자기 울컥해진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세상의 신비에 취해 비밀에 기득차 있는 세계 앞에 서 있는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운명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실존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비밀에 가득차 있는 세계를 탐구하다가 세상의 신비에 취해 태양이 있는 곳까지 날아가려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운명처럼,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미칠줄만 알았는데 울컥 쏟아지는 강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만 가지게 되었다. 

그 그리움은 태양을 그리워하다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절망에 빠진 이카루스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절망에 빠진 시적 자아는 어느날 갑자기 강물처럼 밀려오는 '울컥' 쏟아지는 어떤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이카루스에게는 태양은 신이었고 태양과 같이 되고자하는 욕망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실존은 근원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고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카루스의 추락은 영원성의 상징인 태양에 대한 그리움이고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었기에 이카루스의 추락은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실존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의 상징인 것이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그 근원적 고독, 불안과 절망을 '울컥'하면서 토해낸다.

여신 프시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사랑에 빠진 미소년 큐피터의 영원한 사랑은 신화적 상상력에서 존재하는 커플의 정념이지만, 그러나 인간인 이카루스의 젊음은 언젠가는 시들게 마련이듯, 인간의 실존은 늘 고독하며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다 어느날 갑자기 울컥 쏟아지는 강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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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아픔으로


상실의 아픔으로


사랑이

묘비처럼 쓰러질때면


사랑은 언제나


쓸쓸한 빈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길 떠나는 나그네..




<몽상의 시학>

사랑이 묘비처럼 쓰러져 간다.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사랑은 그러하다. 머무는 곳의 인연이 다하면 떠나야 하는 나그네에게는 사랑은 결핍의 계절에 다름이 아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운명이 나그네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그네의 사랑은 상실의 아픔으로 써내려간 하얀 원고지에서 얼음속의 불꽃처럼 타오른다. 

인간의 욕망이 그러하다. 욕망은 언제나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도달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므로, 그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므로 불가에서는 욕망은 덧없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욕망도 또한 시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욕망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운명과 같은 것이다.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욕망은 존재 결여이며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갈애이고 언젠가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덧없이 사라질 죽음충동이 지배적인 운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완성은 상실에 있다. 그 상실의 아픔으로 사랑은 묘비처럼 쓰러져 가고, 사랑은 쓸쓸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길 떠나는 나그네이고 나그네의 욕망은 사랑의 대상 앞에서는 언제나  얼음속의 불꽃이고 시들지 않는 젊고 매혹적인 신체를 욕망하지만 욕망은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나그네의 사랑은 언제나 얼음속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환영이며 도달할 수 없는갈애이며 강 건너 상실의 아픔으로 불타는 집, 강 건너 불타는 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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