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사무치다
서정춘 지음 / 글상걸상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2016년도 이후 내가 가장 애장하는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

이슬, 사무치다, 라는 어휘를 편집증 환자처럼 좋아하고

이 어휘들을 입말로, 글말로, 수시로 사용한다.

 

표제에 해당하는 시 "이슬에 사무치다"는 아래와 같다.

[시인 서정춘] "이슬에 사무치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나도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 버릴수록 차고 다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타래박 : 긴 자루 끝에 바가지를 달아 물을 푸는 기구.  (≒ 두레박)

 

이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이다.

내 영혼이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기를

그렇게 순수하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살기를

한 때, 바랐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시 한 편 "뻐꾸기"


[시인 서정춘] "뻐꾸기"

백 년만큼 울더라
내 에미 애비 무덤 앞에서
내 불효
꾸욱 참았다가
퍽퍽 울어 주는
저 곡비
백 년만큼 울더라
울더라


곡소리를 팔아 겨우 겨우 살아가는 울음 노비 '곡비'
그런 곡비의 곡소리처럼, 내 불효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뻐꾸기의 울음.
내 울음 - 곡비의 울음 - 뻐꾸기의 울음으로 이어지는 불효의 노래.

불효의 곡소리, 울음, 뻐꾸기의 소리
백 년만큼의 세월보다 더 무겁고 깊게 울려 퍼지며.

이 노래는
아직도 꾸욱 꾹 불효의 울음을 참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시가 되는 것 같다.

 

*

이 책을 여섯 명에게 선물하였다. 앞으로 네 명 정도에게 더 할 생각이다.

제주도 [글상걸상]이라는 곳에서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시집이라 주문 후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비록 시집에 수록된 시는 많지 않지만 시인이 제 살을 깎고 빚어서 만들어 낸

알뜰한 시어들로 구성되어서 그런지, 더욱 값진 시집이라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경 너머의 키스 -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할리우드 배우의 사랑 보고서
다이앤 파 지음, 이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감 

사랑(또는 결혼)은 쟁취하는 것이다.

승부사 기질이 강한 연인일수록 유리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 다이앤 파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 키가 180이 훌쩍 넘고 눈부신 춤 실력을 지닌, 심지어 마음씨까지 너그럽고 따뜻한 남자 정승용씨와 결혼하기 위해 최적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성취욕 과다형으로 싸움꾼 면모를 지녔고, 지적 호기심으로 방대한 공부를 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집요하게 파고들기까지 한다  

저자 다이앤 파의 의도는 분명히 알겠다. 사랑의 힘과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혼혈 결혼에 대한 부모들의 부정적이며 광적인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미국 내 극단적 혼혈 반대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자신의 결혼 과정 및 여러 다양한 커플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적나라한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일련의 노력들이 세상에 가져 올 변화를 믿기 때문이다

 

   피부색보다 문화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할 가장 간단한 장소는 애정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쉬운 일이라는 건 아니다.” (310)  

 

 이 빙의(조지프 매카시 빙의 상태)가 불러일으킨, 이방인들이 몰려온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선한 사람들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것은,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라는 사실이다. 모두에겐 어딘가에서 자신의 아이가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만일 모든 부모가 자식의 애인을 결국 다 같은 인류로(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생각하고 그 기준에 맞춰 판단할 수 있다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한 사람씩 차례차례 변한다면?”(311)  

 

#아쉬운 점 

 

자신의 연애담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너무나 세세한 설명과 구체적인 묘사가 자칫 읽는 이를 피로감에 빠지게 한다. (물론 19쪽부터 33쪽 정도까지, 다이앤이 승을 만나는 장면과 세 번에 걸쳐서 꼬리치는 모습은 흥미진진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사케 폭탄주 세 잔가량 마신 후에도 저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마실 일이다.)   

그러나, 미혼 여성들은 몇 장 읽다가 지레 겁을 먹고 질려 버릴 수도 있겠다. 물론 인종 간의 결합이니 그 갈등의 문제는 일반 결혼하고는 어마어마하게 다르겠지만.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문화와 관습이 다른 두 집안이 만나는 일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인식할 필요도 있는 부분인데. 여섯 커플의 상황을 너무 구체화시켜서 문제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 문화적인 충격은 당연히 있는 일일텐데 말이다.  

 

 #어휘, 문장 다듬기 

 2418냅킨에 끼적인 말도..” -> 냅킨에 끄적인 말도 

 10921이 가족의 부모와 자신은 한 가지 언어로는 미묘한 말뜻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 문장의 의미, 단어의 호응 관계 상, -> “언어로도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1202내가 빠진 잡채 아침식사...” -> 잡채?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단순한 음식 잡채인지. '전체'를 잘못 표기한 것인지.)  

 1824적절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 다른 표현은 없는지, 약간 부정적인 의미가 전달되는 듯. 그런 의미가 아닌데도 말이다  

 

  #국경 너머의 키스 ; 책에 밑줄 긋기

 

177"부모의 욕구와 우리 자신의 욕구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이 말은 우리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필요한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가(내가??) 사랑한 소설들 - 다 읽고서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3편에 나누어 썼습니다.

 

여기에는 그 리뷰 1편만 옮기고. 나머지는 아래 블로그로 대신합니다.

 

https://blog.naver.com/naamoo65/220227994450

 

https://blog.naver.com/naamoo65/220231852754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아주 깊이 탐독했으나, 그 지식의 깊이에

십분의 일도 미치지 못한 듯한 절망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리뷰는 열심히 썼습니다.

.............................................................................................................

 

좋은 작품을 읽으면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학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두 남자!

침묵 안에서도 대화가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이 두 남자의 침묵이 매우 수줍어 보입니다.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지적이고 철학적인, 때로는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유쾌한 수다가

우리 독자에게도 유쾌하게 수용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십 대 이후, 교양과 철학에 대한 독서량이 제로베이스가 되어버린 나는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뇌가 과호흡을 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1.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이 작가의 <<노르웨이 숲>>을 두 번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해변의 카프카>>도 읽은 듯 한데...

아무리 심장 떨리는 밤으로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라도,

이제는 다시 책을 펼치지 않으면...

기억 저편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 생각만이 지배적으로 나를 괴롭힙니다.

다시 꼭 읽어봐야 할텐데... 할텐데...

그런데 어찌, 책 읽기가 세월이 흐를수록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과제처럼, 중압감을 주고 있습니다. ㅠㅠ

 

밑줄 긋기 ... 288-289

 

이동진 ;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텍스트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이 영화 <설국열차>예요. 제가 보기에 <설국열차>는 이야기로 본다면 완벽한 그릇을 만드려고 하는 영화예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굉장히 듬성듬성해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봉준호라는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창작자는 나름대로의 완벽한 배경과 설정을 갖고 있어요. 다만 영화에서는 그게 쉽사리 보이지 않았을 뿐이구요. 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말하자면 하루키의 텍스트를 만드는 방법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 그물 짜기의 방식이 하루키의 소설을 매우 문학적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중혁 ;  제가 말한 '문학적인 모호함'이란 표현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겠죠. 덧붙이자면 하루키의 <<다자키 쓰쿠루>>는 어떤 면으로는 메타 소솔로 읽힐 수도 있겠더라구요.

 

이동진 ;  맞아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김중혁 우리가 이야기를 접하는 방식 그리고 어떤 창작품을 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관한 작품으로도 읽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무엇이 중요할까를 생각해보게 되는거죠. 아까 말씀하신 것에서 가져오자면, 누군가가 그릇 또는 그물을 건네 주었다고 해보죠. 받는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건네준 그 그물이 무엇이었을까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그 이해가 더 커지고 깊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게 문학인 것이고요. 하루키의 이번 작품도 처음에는 '이게 뭐야?' 했다가 그걸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러니까 그물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모든 걸 다 활용해야 해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자기의 생각, 누군가의 충고, 자기의 경험 등을 끌어내서 ', 이런 이야기일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자신만의 답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풍성하면 풍성할수록 좋은 이야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설국열차><<다자키 쓰쿠루>>, 저는 시간이 좀 지나니까 더욱더 굉장히 좋은 이야기구나,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구나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동진 ;  그렇습니다. 좀 다르게 설명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한정된 질량을 가진 재료를 이용해 어떤 내용물을 담아낸다고 가정해봐요. 같은 양의 그 재료를 가지고 그릇을 만들 경우와 그물을 만들 경우를 비교할 때 그 형태를 고려해보면, 그물을 만드는 경우에 훨씬 더 넓게 짤 수 있을 거예요. 반면에 같은 양의 재료로 그릇은 물샐 틈 없이 촘촘하지만 그 대신에 훨씬 적은 면적으로 빚어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독자들의 개입을 허용하고 초청하거나 소환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하루키 소설이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해봐요.

 

김중혁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ㅣㅣㅣㅣㅣㅣㅣ

 

'하루키가 만든 그물' 에 대한 두 사람의 문학적이면서도 영화적인

비유를 바탕으로 하는 진지한 대화를 이해하기에는

내 지적 용량과 배경 지식이 너무나 턱없이 부족해서

겨우 몇 마디도 내것으로 소화를 하지 못하고, 지금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습니다. ㅠㅠ

빨리 가벼운 소화제라도 먹고 와야겠습니다. ^^

 

2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책도 언제 읽었었는지 가물가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상남자 '조르바'를 잊은 듯, 잊은 않은 것 같은... 이런 기억의

정체는 과연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밑줄 긋기 ... 260-262

 

이동진 ;  저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일종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소설의 초반이 참 좋은데요. 일단 ''는 친구를 떠나보냈어요. 친구뿐만 아니라 한 시절과도 이별하게 되었죠. 그 가버린 시절에 대해서 자신이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는 한편 어딘가로 떠나서 새롭게 무언가를 해보려는 때예요.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인물이 다가옵니다. 그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고 여러 사건을 겪다가 불쑥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성장소설의 대표적인 이야기 얼개잖아요.

 

김중혁 ;  맞아요. 중간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고 서른다섯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말해요. "서른다섯이나 되어서 그런 소리를 할 정도면 대가리가 제대로 여물긴 글렀구나." 그러니까 서른다섯 먹은 주인공 ''의 대가리가 여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장소설의 성격이 있죠.

 

이동진 ;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조르바가 "날 데려가시겠소?"라고 물어요. 이때 "그럼요"라고 응하면 이상하죠. 그 대신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라고 묻습니다. 여기에 조르바가 한다는 말이 "당신이 들어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해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라는 거죠. 저는 이 소설이 먹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조르바를 만나기 전에 주인공은 먹는 것을 꺼리거나 죄악시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육체는 우리 영혼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뻘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하자면 육체를 부정하는 플라톤주의자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그야말로 '핏기 없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조르바를 만나면서 달라졌죠. 지금 말씀드린 '수프'로 상징되는 음식이나 먹는 행위, 또는 과부와의 하룻밤으로 상징되는 육체적인 쾌락에 대해 눈을 뜨고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이를 통해 스스로를 잡아 두었던 수많은 이상과 당위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쟁취하는 이야기가 된 거죠. 저는 이런 부분이 잘 형상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김중혁 ;  뒤에 다시 그 만남이 언급되죠. 조르바한테 그때 내가 수프를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까 조르바가 "뭐 딱 보아하니 펜대 좀 굴릴 줄 알고" 이렇게 대답해요. 육체를 숭상하지는 않지만 육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저도 참 좋았지요. 스스로 무지렁이라고 부르는 조르바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동진 ;  . 조르바는 결국 서서 죽는 사람이잖아요.

 

김중혁 ; 마지막 장면에서 조르바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가잖아요. 저는 이 사람이 뛰어내리면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하고 덜컥 겁이 났어요.

 

이동진 ;  그러네요. 날개가 돋아서 훨훨 비상할 것 같은 사람이기도 하죠. 저는 이번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톨스토이와 비슷한 소설가구나 생각했어요. 톨스토이는 소설 못지않게 사상, 현실과의 접목을 중요시했던 사람이었죠. 그 역시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었구요. 그런 면에서 비슷하기도 해요.

 

김중혁 . 저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에 이런 부분이 특히 그랬는데요, 주인공 ''가 나비가 부화하려는 순간을 지켜봐요.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입김을 불어넣어줬는데 그 따뜻한 기운 때문에 나비가 부화하려다가 말라 비틀어져 죽게 되고 그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껴요. 그러니까 모든 것에는 변화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데 조급함 때문에 인위적으로 시간을 당기려고 하면 그 존재를 망가뜨릴 수 있구나 깨닫는 거죠. 조르바의 시간, ''의 시간 그리고 그 둘이 만나서 서로 변화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마 카잔차키스가 심취한 베르그송의 철학과 그 맥이 닿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ㅣㅣㅣㅣㅣㅣㅣ

 

두 작가는 '조르바'라는 인물은 '~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으로의 자유'를 가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무엇으로의 자유'를 가지고 삶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는 '조르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의 '조르바'는 어떤 사람일까요?

유쾌하면서도 단순 명쾌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조금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지요.

소극적이고 머뭇거리는 뭔가 주저주저하며 소심함을 드러내는 스타일,

하지만 내면은 정서적으로 충만한 그런 류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는 못난이로 그려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현실에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 훨씬 많겠지요!

그래서,

 '조르바'는 소설 속의 캐릭터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는 걸로!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 읽을 책으로, <<지와 사랑>>(헤르만 헤세)를 추천합니다.

오늘 유난히, <<지와 사랑>>'나르치스''골드문트'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p.s.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리뷰 2, 3편도 따로 올렸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틀리기 쉬운 국어문법 언어규범 공공언어 강의
임규홍 지음 / 박이정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구성이 간결하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해설에 대한 정답을 모아 두었으면. 활용성이 훨씬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 조용한 열정

 

[개요] 드라마, 2015 벨기에/영국, 12세 관람가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출연] 신시아 닉슨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은 영화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다룬 예술 영화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전국에 몇 곳 없어서, 겨우 서울 명동역 CGV에서 자리를 찾아 비싼 값을 치르고 보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동네에서 상영도 안 한담. 시에 관한 얘기, 시인의 생애에 대한 다큐 같은 내용? 너무 지루하고 졸립거나, 너무 이해할 수 없게 난해하면 어떡하지.

 

그만 기우(杞憂)에 그칠 쓸데없는 걱정을 혼자 다 하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를 보면서

 

, 내가 오늘 새로운 별명을 하나 얻겠구나.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그렇게 처절하게(언성을 높이며) 여성 인권에 대해서 대변할 일이 아니었어. 이 영화를 함께 보는 지인(知人)들은, 나를 떠올리겠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내가 계속 겹쳐지는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신경질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심오한 설득력. 내가 어쩐지 그녀를 약간 닮은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무엇보다 인물의 생각과 그 생각을 피력하는 방식이 좋았다. 독설로 가득 찬 분노는 더욱 좋았다. (나도 정말 특이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


한 생애의 비애, 고독, 엄격함, 은둔자의 냉정함 등을 처절하게 도려내는 듯이 날카롭게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화법. 맘에 들었다. 에둘러 얘기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한 감독의 작법이 좋았다.
혹자는 인물의 생애를 연대기적 구성으로 지루하게 구성-연출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에밀리의 생애에서 가족, , 사색, 죽음, 고독, 냉정함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다 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두 시간 동안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배우 신시아 닉슨(에밀리 디킨슨 분)의 열정이 크게 한 몫 했다 여긴다.
특히 창가를 보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 종교에 대한 깊은 성찰,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의 그녀의 모습, 등등은 그 자체로 시인인 듯한 몰입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어쩌면 제목처럼,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꽤나 묵직하고 깊은 열정을 치열하고 가혹하게 뿜어냈는지도 모르겠다.

뜨겁지 않으면서 소용돌이치는 열정이 더 날카롭게 더 단단하게 내면을 담금질하는 듯한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의 고독과 아픔이 어쩐지 고스란히 내것인 냥, 강한 몰입감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내 안에 그런 깊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는 것일까. 그건 정말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시인의 삶이라 하여, 지고지순한 삶이라 하여, 저토록 처절하게 냉혹하고 냉담하고 고독할 필요도 없을텐데 말이다.

꽤나 오래도록 가슴 시림이 남게 하는 영화였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

 

19세기와 20세기의 감수성을 연결하면서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냈던 미국 시인.

청교도 집안에서 정치인 아버지 아래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성경과 신화,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즐겨 읽었다.

거의 매일 시를 지어서 작품 수가 2000여편에 달하지만,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디킨슨의 시는 17세기 형이상학파 시풍을 닮았지만, 그녀의 간결한 스타일과 이미지즘적 경향은 매우 현대적이다.

주로 슬픔과 죽음을 소재로 다루었고, “냉정하고 고독한 은둔자의 깊은 비애를 노래했다.

<출처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밀리 디킨슨, 민음사, 2017)>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편 ;

 

저 하찮은 돌멩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저 하찮은 돌멩이들은

길 위에 홀로 뒹구는,

성공을 걱정하지도 않으며

위기를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

그의 코트는 자연의 갈색,

우주가 지나가며 걸쳐 준 것

태양처럼 자유로이

결합하고 또는 홀로 빛나며,

절대적인 신의 섭리를 지키며

덧없이 꾸밈없이 -

 

 

-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시이다.

 

 

#사족(蛇足)

 

아주 오래도록 만남을 유지하는 지인들의 모임이 있다.
그분들과 오늘(2017.12.03.) 12시에 영화를 보았다. 아침 1030분에 만나서. 가벼운 아침을 먹고 말이다. 워낙 이벤트를 잘 준비하시는 총무님 덕분에 이번 영화 감상도 특별했다.
이 총무님은 우리들의 부족한 문화 욕구를 자주 꽤나 멋지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다. 그분 덕에 아주 색다른 경험을 큰 어려움 없이 하곤 한다.

오늘은 서울 명동역 8번 출구에 있는 명동 CGV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조용한 열정'[더스페셜패키지]로 보았다. 매표소는 11, 영화관은 10(일반적이지 않은 시스템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셜패키지의 내용은, 영화 관람+씨네 라이브러리 1시간 +시집1, 영화포토 엽서, 시집만들기 재료 등으로 푸짐했다.
정말 오늘 처음 경험한 씨네 라이브러리는 기묘한 설렘을 가득 안겨 주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곳 씨네 라이브러리는 나에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