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사무치다
서정춘 지음 / 글상걸상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2016년도 이후 내가 가장 애장하는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

이슬, 사무치다, 라는 어휘를 편집증 환자처럼 좋아하고

이 어휘들을 입말로, 글말로, 수시로 사용한다.

 

표제에 해당하는 시 "이슬에 사무치다"는 아래와 같다.

[시인 서정춘] "이슬에 사무치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나도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 버릴수록 차고 다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타래박 : 긴 자루 끝에 바가지를 달아 물을 푸는 기구.  (≒ 두레박)

 

이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이다.

내 영혼이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기를

그렇게 순수하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살기를

한 때, 바랐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시 한 편 "뻐꾸기"


[시인 서정춘] "뻐꾸기"

백 년만큼 울더라
내 에미 애비 무덤 앞에서
내 불효
꾸욱 참았다가
퍽퍽 울어 주는
저 곡비
백 년만큼 울더라
울더라


곡소리를 팔아 겨우 겨우 살아가는 울음 노비 '곡비'
그런 곡비의 곡소리처럼, 내 불효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뻐꾸기의 울음.
내 울음 - 곡비의 울음 - 뻐꾸기의 울음으로 이어지는 불효의 노래.

불효의 곡소리, 울음, 뻐꾸기의 소리
백 년만큼의 세월보다 더 무겁고 깊게 울려 퍼지며.

이 노래는
아직도 꾸욱 꾹 불효의 울음을 참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시가 되는 것 같다.

 

*

이 책을 여섯 명에게 선물하였다. 앞으로 네 명 정도에게 더 할 생각이다.

제주도 [글상걸상]이라는 곳에서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시집이라 주문 후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비록 시집에 수록된 시는 많지 않지만 시인이 제 살을 깎고 빚어서 만들어 낸

알뜰한 시어들로 구성되어서 그런지, 더욱 값진 시집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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