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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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은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가 올해 5월에 발표한 신작 소설이다. 정보라 정도의 지명도라면 오픈빨도 있고해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노출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신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버린 느낌이 있다. 심지어 정보라의 팬이 아니라면 이 책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나 또한 운영 중인 유튜브 영상 댓글 중에 어떤 분의 요청이 없었더라면 전혀 몰랐던 책이었다. 정보라 작가가 '저주토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신작을 읽기 전에 그녀의 스타일을 미리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에 겸사겸사 함께 구매했던 것인데, 아무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주토끼'를 먼저 읽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6612608


만약에 이 책만 사서 읽었더라면 아마도 '저주토끼'는 내 구매목록에서 지웠을 것 같다. 그만큼 본작 '아이들의 집'은 한마디로 좀 재미가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저주토끼'로 인해 개인적인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아쉽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을 연상시키는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되는 이 작품은 역시나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고 영유아 계층의 해외입양과 아동학대 등, 아이들의 양육과 관련한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공감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어필이 좀 힘들 것 같다는 태생적 한계가 느껴진다. 나 역시 아이 둘을 키워봤던 부모의 입장이지만 입양이나 아동학대 등은 또다른 문제라서 일부러 굳이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을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소재와 주제가 어떻든 스토리가 모든 걸 압도할 만큼 재미있기만 하다면야 상관이 없을텐데 이 작품은 그동안 SF장르로 입지를 다져왔던 작가답게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보이는 작가적 상상력이 동원된 그럴듯한 사회 시스템과 첨단 과학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장편이라는 긴 호흡을 드라마틱하고 집중력있게 끌고가는 중심 서사가 약하다보니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좋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장르소설다운 스토리의 재미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집'이란 간단히 말해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보육원 시스템이라 보면 되겠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라 누구나 원하면 안심하고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미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만약 소설 속 '아이들의 집' 같은 시스템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경제적 이유로 점점 늦어지는 결혼과 저출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렇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집'이란 복지 행정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어떤 인간집단의 만행이 드러나는 과정을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는 빌런의 실체를 찾아서 응징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들과 관련한 여러 사례들을 그저 나열하며 보여주는 선에서 정리하고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방식을 취하면서 거기에 뭔가 고차원적인 분위기를 넣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가지 상징을 의미하는 듯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을 맥락도 없이 마구 뿌려놓고 있기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나같은 경우는 다 읽고나서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을 못잡았을 정도로 난해하게 느껴졌었는데, 솔직히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한번 더 정독을 하고 부분적으로 반복해서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 본의아니게 이 책을 거의 3번 이상 읽은 셈인데도 놀라운건 아직도 완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거다.


당장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봐도 어떤 상징성이나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데 '아이들의 집'과 관련한 아이들과 직원들의 이름이 '무정형', '정사각형', '삼각형', '색종이', '가루', '줄넘기', '솜털' 등, 모두 동심의 세계에서 가져온 듯한 명칭들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외부에 속하는 인물들은 '섬', '요', '표', '관', '란', '멱' 등의 묘한 한자들이고 '엿볼 섬', '넉넉할 요', '겉 표', '익숙할 관', '빛날 란', '찾을 멱'이라는 뜻까지 찾아봐도 도무지 의도가 파악되지 않을 뿐더러... 



사실 따지고보면 이 이름들이 내부인과 외부인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를 상징한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작가가 한자 한자 신중하게 의미를 담아 선택한 글자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냥 신비스런 미래의 분위기를 내기 위한 목적에서 무작위로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의 낮설고 기묘한 이름 따위를 비롯하여 하얀 사마귀나 항아리, 우주선 같은 은색 차 등, 분명히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은 개체들...



그리고 우두머리 빌런으로 추정되는 더없이 평범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라는 묘사를 보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따온 캐릭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부가 나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라는 구절은 자연스럽게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거기에다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비중있게 등장하는 귀신과 무속신앙은 아무래도 기술과학이 주도하는 세계와 대비되는 인간의 모순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귀신이라는 개념은 결국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집어넣은 것 같은데, 이 책을 난해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일 뿐 사실상 별다른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작가의 독특한 취향이자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맥거핀으로 쓴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저주토끼'에서 보여준 작가의 내공과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미리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허세와 예술병으로 덧칠된 난잡한 책이라 치부했을 정도로 이번 신작은 정말 불친절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마음 만큼은 충분히 와닿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거나 어떤 인격을 가졌더라도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다.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불행해져선 안된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권리다. 아이들의 집은 곧 어른들의 집이다...



정보라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싶은 얘기는 이런 구절들에 다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하고 좋은 의도 만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기는 한데, 문해력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3번을 읽고도 이해를 못한 부분이 수두룩하다면 과연 누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b1AcO8Vod0&t=35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9734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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