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명문장/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서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했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엄하게 약속했다.
(・・・) 곧 모든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30여 척이 우리 배들을 둘러쌌다. 여러 장수들은 양쪽의 수를 헤아려보고는 모두 도망하려는 꾀만 내고 있었다. (…) 나는 노를 빨리 저어 앞으로 나아가며 지자, 현자등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았다. 탄환이 폭풍우같이 날아갔다. 그러자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쳐들어왔다 물러갔다 했다. 그러나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다니며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
(…) 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

- 이순신, 난중일기 중

《난중일기》에 나온 명량해전 기록이다. 12척의 배밖에 없는 상황에서 울돌목이라는 좁은 해협의 물길을 이용하여 10배가 넘는 적을 기적적으로 물리친 유명한 승전이다. 하지만 당일의 기록을 보면 전략은 기본이요,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과 결단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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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학문•철학/고문

고문은 우리 역사의 가장 추악한 측면이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가들에게 가해졌던 고문은 해방 이후에도 계승되어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용공조작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서 억지 자백을 받는 수단으로도 사용됐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당한 김근태의 고통은 영화 <남영동1985>에서 자세히 묘사됐다. 고문은 그 자체로 끔찍하지만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평생을 괴롭힌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고 트라우마에시달렸다. 이런 증상은 고문 피해자들에게 빈번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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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문화/조선일보

1920년 창간됐고 친일 신문으로 시작했다. 1921년 친일파 송병준이 인수했는데 덕분에 대중들에게 외면당해 경영이 악화됐다. 그러던 중 1924년 신석우가 매입하고, 민족지도자 이상재를 사장으로, 주필을 안재홍으로 세우면서 민족지로 변신했다. 이때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자 사주 김성수와 사이가 나빴던 이상협이 스카우트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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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유적•유물/신윤복

신윤복(1758년~?)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풍속가로, 김홍도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김홍도에 비해 신윤복은 양반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고 채색이 뛰어났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김홍도와는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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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인 욕구의 적절한 한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비율, 각자가 원하는 만큼과 그 소유물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거대한 부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부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것으로 위로를 받지 못한다.

부는 마치 바닷물과도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에 시달린다. 이는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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