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학문•철학/고문
고문은 우리 역사의 가장 추악한 측면이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가들에게 가해졌던 고문은 해방 이후에도 계승되어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용공조작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서 억지 자백을 받는 수단으로도 사용됐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당한 김근태의 고통은 영화 <남영동1985>에서 자세히 묘사됐다. 고문은 그 자체로 끔찍하지만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평생을 괴롭힌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고 트라우마에시달렸다. 이런 증상은 고문 피해자들에게 빈번히 나타난다.
250.문화/조선일보
1920년 창간됐고 친일 신문으로 시작했다. 1921년 친일파 송병준이 인수했는데 덕분에 대중들에게 외면당해 경영이 악화됐다. 그러던 중 1924년 신석우가 매입하고, 민족지도자 이상재를 사장으로, 주필을 안재홍으로 세우면서 민족지로 변신했다. 이때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자 사주 김성수와 사이가 나빴던 이상협이 스카우트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249.유적•유물/신윤복
신윤복(1758년~?)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풍속가로, 김홍도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김홍도에 비해 신윤복은 양반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고 채색이 뛰어났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김홍도와는 느낌이 다르다.
소유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인 욕구의 적절한 한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비율, 각자가 원하는 만큼과 그 소유물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거대한 부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부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것으로 위로를 받지 못한다.
부는 마치 바닷물과도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에 시달린다. 이는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이다.
248.장소/강화도
김포를 마주하고 있는 섬. 강화도만큼 한반도 역사에서 각종 이야기가 얽힌 곳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와 조선 문화가 아름답게 절충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도 강화도의 사적이다. 이 근처에 각종 역사유적이 몰려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