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고 하면 모든 여자들이 다 기뻐 날뛸 거라 생각하는 관습이, 여자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서슴지 않고 예쁘다 아니다를 말하는 이 분위기가 정말이지 싫었다.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도록 오래 연습한 사람이라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소중하고 나는 우아하고 품격있을 것이다’라고 연습해 오지 않았던가.
나를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나 자신을 비겁하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데 더 도움이 될까?"
이쯤에서 나는 운다. 빈속에 소주를 마실 때처럼 식도가 찌르르하기도 하다. 나는 알아낸 것이다.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랐던 것은 물론 아이를 위해서인 것도 당연히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내가 자랑하고 싶고 내가 잘못 산 것을 아이를 통해 면죄 받고 싶어서라는 것을. 그것은 너무 유치하고 너무 단순해서 내 생각의 목록에는 절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치열하다. 스스로 위선을 만들어내느라고.
가끔은 위선이 훨씬 좋다. 훨씬 편하다. 훨씬 원만하게 일을 풀어나가는 성숙한 방법처럼도 느껴진다. 게다가 진실은 가끔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똬리 튼 거짓과 위선을 적발해 내야 한다. 위와 같은 긴 과정을 거쳐서라도 스스로의 거짓들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신발 속에 든 작은 돌멩이처럼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편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긴 경주에서 다른 아이들이 다 달려갈 때 우리가 멈추어 서서 신발 속의 작은 돌을 빼내려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많이 뒤처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추어 서서 돌멩이를 빼낸다. 그것은 불편함을 제거하려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는 우리를 더 빨리 달리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연습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책을 읽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꿈을 꾸었고 나 자신을 점검했고 때로는 오랜 대화를 스스로와 나눴고, 그리고 또 연습, 또 연습.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부모든 자식이든, 누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독립을 하고, 방이나 집을 따로 정하고, 거리를 두기를 바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거리를 두는 것. 물리적 거리. 정 불가능하면 정신적, 시간적 거리라도 두기를. 스스로의 능력을 정확히 재단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것과 해드릴 수 없는 것을 통보하기를. 그분들도 성인이다. 당신들이 부모처럼 부모를 돌보는 순간 약한 그분들은 아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잊지 말기를. 약간 미안한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라는 것을.
자기 자신을 지키고 소중히 하는 일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 주변의 가난한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혹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다. 하물며 내 부모도 못 돌보랴. 그러나 그때에도 내 자존과 조건은 고려되어야 한다. 산소마스크가 떨어져 내릴 때 미안한 마음을 잠시 접고 내가 먼저 그걸 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기만 한다면 결코 되고 싶어하지 않을 어떤 것이 되려고 몸부림치며 우리의 삶을 소모하는가?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우리의 창조 목적과는 반대로 가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우리의 시간을 허비하는가?
언제나 그렇듯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어떤 선입견이나 바람이 없이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그냥 그중에서 하나를 택하려고 한다. 요즈음 많이 고독했다. 내 맘에 퇴비가 쌓이고 있는 거다. 꽃은 비옥한 땅에서 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하고 싶은 말도 있다는 것을. 그것은 누군가 나를 절벽으로 밀었는데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내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은 기필코 우리를 절벽으로 민다. 그때 우리는 선택할 것이다. 추락할 것인지 날아오를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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