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삶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에게 의미 있고 강렬했던 경험들이 그 말 한마디에 응축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대할 때 나는 그 말이 알려주는 낱개의 축어적 정보가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서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호기심을 갖는다. - P7
나는 개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삶의 패턴에 ‘말의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나리오란 영화 이야기를 담은 각본, 대본을 뜻한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면, 우리는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말의 시나리오란 말이 되풀이해 들려주는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인 셈이다. - P8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를 이 책에서는 ‘타인지향시나리오Other-Directed Scenario‘라고 부른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써가면서도 그 기준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내적인 신호와 기준을 무시하는 삶을 반복한다.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비중이 높고 영향력이 큰 배역을 맡는다. 타인지향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욕구, 선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남의 감정, 욕구, 선호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느라 엄청난 감정 에너지를 소모한다. - P10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 ‘내부지향 시나리오 Inner-DirectedScenario‘를 배워갔다. 타인지향 시나리오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들려주는 정보들, 예를 들어 나의 감정, 욕구, 선호, 의도, 가치 등을 삶의 중심에 두는 이야기를 뜻한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판단과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내면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전개도를 그릴 수 있다. 타인이 아닌 나를 중심에 세우고 의미 있는 관계들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 P13
‘하지 못하는 말들‘은 심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그 영토에 주도권을 세우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선을 긋고, 물러서게 하고, 존중을 요구하는 말을 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설 때 분노는 내면에 쌓인다.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자책감이 고스란히 남는다. - P29
내면이 강하고 단단한 사람은 도와달라는 말을 억지로 참지 않는다. ‘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 P32
우리의 뇌는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이 놀랐던 순간, 중요한 사건, 자주 반복한 경험 들을 편도체라는 비밀 창고에 저장한다. ‘사건-자서전적 기억EAM, Episodic-AutobiographicalMemory‘이라는 용어가 있다. 삶에서 특별했던 맥락이 감각, 감정과 함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뜻인데, 바로 이것이 편도체에 입혁되는 방식이다. 변연계 깊은 곳에 숨겨뒀다가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바로 소환해 나를 지키는 데 사용한다. - P33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기를, 어디서든 ‘나’가 우세하기를 원했다. 진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가장자리에 있어도 빛이 난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했다. - P35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듯이 과거 경험은 반복되는 말에서 드러난다. - P37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엇을 확인하고 싶거나 지키고 싶은지, 혹은 피해 가거나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거기에도 당신이 오랫동안 버텨낸 불편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지 모른다. - P40
과한 반응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고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의견차이를 좁히기 위해 서로 상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생략됐다. - P44
우리는 앞으로 ‘나는 왜 이런 상황이 불쾌할까?‘라는 물음표를 따라가야 한다. 도망가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 내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야 내면의 힘이 생긴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이야기의 결말을 써 내려갈 수 있다. - P45
엄마의 자극을 따라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브레이크를 걸 겨를도 없이 감정에 불꽃이 튄 것이다. 숨죽여 살던 어떤 그림자가 나타나서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P48
모든사람이 다정하게 말해야 하는것은 아니다. 말투가 강하다고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누구나 그 말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괜찮냐는 위로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정말로 괜찮아지도록 돕고 싶다. 예전의 나에게 괜찮냐는 말은 내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간절히 괜찮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50
무엇을 바꾸고 싶다면 긴긴 시간을 바라봐야 한다. 어떤 말은 과거-현재-미래로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현재 나는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지 길게 물어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시간이 산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 즉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또 무엇을 간절하게 바랐는지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 긴 시간동안 당신은 무엇을 간절하게 원했는지 생각해보자. 내가 따뜻함에 목마르고, 상연 씨가 안정감을 갈구했듯이 말이다. - P53
제프리 영 박사의 심리도식치료에는 ‘핵심적인 정서 욕구coreemotional needs‘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마다 어릴 적에 충족돼야 하는 정서적 자원을 뜻한다. 이것이 있어야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덜 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 P60
어린 시절에 핵심적인 정서 욕구들을 충족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란다. 단단한 자기감을 기반으로 고단한 삶을 항해할 귀한자원을 가득 채우는 셈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정서 욕구들을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하면 결핍을 느낀다. - P61
우리 내면에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강렬한 자기감의 신호, 즉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이 그것에 주목하고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느꼈구나", "그렇게 느낄수 있어"라는 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진솔한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건강한 자기감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 P62
긴 결핍의 시간은 이렇게 한 사람을 ‘타인지향 시나리오‘에 가둬버린다. - P63
타인지향 시나리오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내적신호와 기준을 무시하는 각본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 P63
따라서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의 말에는 자기감sense of self이 결여되어 있다. (중간생략) 그들의 말에는 ‘자기’가 밀려 있거나, 사라져 있다. - P64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은 의미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부족하다. 충분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만족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관심과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실한 애정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충분히 받아들여진 사람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본값에서 출발한다. 그 덕분에 관계를 맺을 때 균형점을 잘 찾는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나를 소외하지 않는 적정 지점에서 말하고 반응한다. 순응할 때와 불응할 때를 알고, 분노할 때와 슬퍼할 때를 혼동하지 않는다. - P66
대화를 편안하게 하려면 ‘나‘, ‘너‘,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 - P67
문제는 그게 지나칠 때이다. 남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자기 것을 포기한다면, 손해와 양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무례한 사람들과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나만의 기준과 선호를 스스로 모른다면 당신도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나를 잃어버린 사람 중 한 명이다. - P67
당신의 말은 지금보다 더 편안해질 수 있다. 남의눈치를 덜 보고 덜 애쓰면서도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적정 거리에서 서로 좋을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며 교류할 수 있다. 종종 대화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낡은 시나리오부터 멈춰야 한다. 그것을 멈추려면 그동안 자동으로 재생되어온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눈을 더 크게 뜨고서 나 자신과 그런 나를 지배해온 시나리오를 찾아봐야 한다. - P69
화라는 감정은 피해 다닌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체지방처럼 쌓여서 다른 부작용을 남긴다.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엉뚱한 사람에게 생뚱맞게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는 또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린다. - P74
좋은 관계는 내가 참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쪽이 늘 땅으로 기울어 있는 시소는 재미가 없다. 오히려 각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서로 힘의 탄성을 느낄때, 협력과 파트너십을 발휘할 때 관계는 흥미로워지고 깊어진다. - P77
만약 자신의 욕구와 정서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이 같은 두려움을 지닌다면, 그래서 일단 괜찮다고 말한 자음에 타인의 반응을 살핀다면 당신은 복종 시나리오에 지배받는다고 할 수 있다. - P78
당신이 괜찮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한 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감정과 욕구가 정말로 괜찮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습관적인 두려움 때문에 나의 감정과 욕구를 숨기려는 것은 아닌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얘기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힘들지?", "걱정했지?" 하면서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쉽고, 안타깝고, 답답한 지점도 나만안다. 나만 아는 것에 관해서는 소리 내어 말해야 한다. - P79
대개 건강한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따로 있고 그 경계가 분명하다. 이것은 친밀감과는 다른 개념이다.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부모가 자녀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고, 자녀도 부모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부모는 지붕과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자녀는 그 아래에서 안전하게 제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자란다. - P87
정체감이 흐려지면 진정한 의미의 친밀감을 만들기도 어려워진다.관계는 거울속 나와의 대화에 토대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본 적이 없으면 상대와 동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항상 자신이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희생을 자처해서 억울해질 수도 있고,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 P89
책임은 필요하다. 그러나 각자의 몫을 잘 구분해야 한다. 지나친 책임 의식은 과도하게 통제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사전에 손을 쓰면 문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넘은 책임감은 수시로 자신을 죄책감의 늪에 빠트린다. 강력한 해결사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처리하면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인에이블러enabler‘라고 일컫는다. 자신은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망치고 있다는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 P93
외국어를 연습하듯이 말도 연습해야 한다. 슬픔과 좌절을 드러내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위로받는 경험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 - P95
현재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멈추거나 노력의 방향을 바뭐야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때인지 모른다. - P100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에 집착할수록 정서적인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 안의 것을 소진하여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때문이다. 환호와 박수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외로움과 허무함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 - P101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본래 성향대로 행동할때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아갈 때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살려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 P105
자기감이란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때 자기감의 자원들이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상당히 고단해진다. 내 안에서 기쁨과 보람, 감사와 평안, 행복과 만족감을 만들 수 없다면 끊임없이 밖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외부상황에 따라 자존감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다. - P108
비관적인 자기감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에 집중할 수 없다. 내면의 안테나가 전송하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았는지, 내 말이 적절했는지 점검하느라 분주해진다. 스스로를 평가하고 탓하느라 대화에서는 소극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끊임없이 자신을 주목하고, 기다렸다는 듯 사소한 문제를 꼬집어 과장하고, 가혹하게 비판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 존재는 내면을 다 갉아먹는다.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불필요한 내전을 너무 많이 치러야 한다. - P113
결함 시나리오는 ‘나쁜 자기감‘을 느끼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 결함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가능성‘보다는 ‘문제‘와 동일시한다. - P115
여기서 먼저 명확하게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도록 과도한 비판을 받아왔다. - P116
우리는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고 실수를 한다. 여러 면에서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하다고 ‘문제적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존재being와 행동doing은 다른 차원에 있다. 생명을바라볼 때는 ‘부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봐야 한다. - P116
결함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결점이 많고, 열등하며, 무가치하다고 믿는다. - P117
당신이 결함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을 향한 비난을 멈추는 일이다. 오랫동안 설정되어 있던 자기 비난의 알람을 꺼야 한다. 자신을 모질게 평가해온 습관적 손가락질을 그만두고, 나머지 손가락을 마저 다 펴서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 P119
‘단단한 사람은 잘못했을 때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라고 말할 줄 안다. 그 말은 자신을 손상하지 않는다. 만약 잘못을 인정하면 지는 것 같거나, 강렬한 수치심과 억울함에 휩싸이거나, 자기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다면 당신에게도 결함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월이라는 가면 속에서 자신을 미워하고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나의 일면일지도, 당신의일면일지도 모를 일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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