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삶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에게 의미 있고 강렬했던 경험들이 그 말 한마디에 응축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대할 때 나는 그 말이 알려주는 낱개의 축어적 정보가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서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호기심을 갖는다. - P7

나는 개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삶의 패턴에 ‘말의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나리오란 영화 이야기를 담은 각본, 대본을 뜻한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면, 우리는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말의 시나리오란 말이 되풀이해 들려주는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인 셈이다. - P8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를 이 책에서는 ‘타인지향시나리오Other-Directed Scenario‘라고 부른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써가면서도 그 기준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내적인 신호와 기준을 무시하는 삶을 반복한다.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비중이 높고 영향력이 큰 배역을 맡는다. 타인지향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욕구, 선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남의 감정, 욕구,
선호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느라 엄청난 감정 에너지를 소모한다. - P10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 ‘내부지향 시나리오 Inner-DirectedScenario‘를 배워갔다. 타인지향 시나리오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들려주는 정보들, 예를 들어 나의 감정, 욕구, 선호, 의도, 가치 등을 삶의 중심에 두는 이야기를 뜻한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판단과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내면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전개도를 그릴 수 있다. 타인이 아닌 나를 중심에 세우고 의미 있는 관계들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 P13

‘하지 못하는 말들‘은 심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그 영토에 주도권을 세우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선을 긋고, 물러서게 하고, 존중을 요구하는 말을 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설 때 분노는 내면에 쌓인다.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자책감이 고스란히 남는다. - P29

내면이 강하고 단단한 사람은 도와달라는 말을 억지로 참지 않는다. ‘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 P32

우리의 뇌는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이 놀랐던 순간, 중요한 사건, 자주 반복한 경험 들을 편도체라는 비밀 창고에 저장한다. ‘사건-자서전적 기억EAM, Episodic-AutobiographicalMemory‘이라는 용어가 있다. 삶에서 특별했던 맥락이 감각, 감정과 함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뜻인데, 바로 이것이 편도체에 입혁되는 방식이다. 변연계 깊은 곳에 숨겨뒀다가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바로 소환해 나를 지키는 데 사용한다. - P33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기를, 어디서든 ‘나’가 우세하기를 원했다. 진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가장자리에 있어도 빛이 난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했다. - P35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듯이 과거 경험은 반복되는 말에서 드러난다. - P37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엇을 확인하고 싶거나 지키고 싶은지, 혹은 피해 가거나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거기에도 당신이 오랫동안 버텨낸 불편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지 모른다. - P40

과한 반응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고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의견차이를 좁히기 위해 서로 상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생략됐다. - P44

우리는 앞으로 ‘나는 왜 이런 상황이 불쾌할까?‘라는 물음표를 따라가야 한다. 도망가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 내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야 내면의 힘이 생긴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이야기의 결말을 써 내려갈 수 있다. - P45

엄마의 자극을 따라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브레이크를 걸 겨를도 없이 감정에 불꽃이 튄 것이다. 숨죽여 살던 어떤 그림자가 나타나서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P48

모든사람이 다정하게 말해야 하는것은 아니다. 말투가 강하다고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누구나 그 말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괜찮냐는 위로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정말로 괜찮아지도록 돕고 싶다. 예전의 나에게 괜찮냐는 말은 내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간절히 괜찮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50

무엇을 바꾸고 싶다면 긴긴 시간을 바라봐야 한다. 어떤 말은 과거-현재-미래로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현재 나는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지 길게 물어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시간이 산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 즉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또 무엇을 간절하게 바랐는지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 긴 시간동안 당신은 무엇을 간절하게 원했는지 생각해보자. 내가 따뜻함에 목마르고, 상연 씨가 안정감을 갈구했듯이 말이다. - P53

제프리 영 박사의 심리도식치료에는 ‘핵심적인 정서 욕구coreemotional needs‘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마다 어릴 적에 충족돼야 하는 정서적 자원을 뜻한다. 이것이 있어야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덜 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 P60

어린 시절에 핵심적인 정서 욕구들을 충족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란다. 단단한 자기감을 기반으로 고단한 삶을 항해할 귀한자원을 가득 채우는 셈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정서 욕구들을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하면 결핍을 느낀다. - P61

우리 내면에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강렬한 자기감의 신호, 즉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이 그것에 주목하고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느꼈구나", "그렇게 느낄수 있어"라는 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진솔한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건강한 자기감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 P62

긴 결핍의 시간은 이렇게 한 사람을 ‘타인지향 시나리오‘에 가둬버린다. - P63

타인지향 시나리오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내적신호와 기준을 무시하는 각본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 P63

따라서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의 말에는 자기감sense of self이 결여되어 있다. (중간생략) 그들의 말에는 ‘자기’가 밀려 있거나, 사라져 있다. - P64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은 의미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부족하다. 충분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만족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관심과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실한 애정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충분히 받아들여진 사람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본값에서 출발한다. 그 덕분에 관계를 맺을 때 균형점을 잘 찾는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나를 소외하지 않는 적정 지점에서 말하고 반응한다. 순응할 때와 불응할 때를 알고, 분노할 때와 슬퍼할 때를 혼동하지 않는다. - P66

대화를 편안하게 하려면 ‘나‘, ‘너‘,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 - P67

문제는 그게 지나칠 때이다. 남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자기 것을 포기한다면, 손해와 양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무례한 사람들과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나만의 기준과 선호를 스스로 모른다면 당신도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나를 잃어버린 사람 중 한 명이다. - P67

당신의 말은 지금보다 더 편안해질 수 있다. 남의눈치를 덜 보고 덜 애쓰면서도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적정 거리에서 서로 좋을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며 교류할 수 있다. 종종 대화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낡은 시나리오부터 멈춰야 한다. 그것을 멈추려면 그동안 자동으로 재생되어온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눈을 더 크게 뜨고서 나 자신과 그런 나를 지배해온 시나리오를 찾아봐야 한다. - P69

화라는 감정은 피해 다닌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체지방처럼 쌓여서 다른 부작용을 남긴다.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엉뚱한 사람에게 생뚱맞게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는 또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린다. - P74

좋은 관계는 내가 참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쪽이 늘 땅으로 기울어 있는 시소는 재미가 없다. 오히려 각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서로 힘의 탄성을 느낄때, 협력과 파트너십을 발휘할 때 관계는 흥미로워지고 깊어진다. - P77

만약 자신의 욕구와 정서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이 같은 두려움을 지닌다면, 그래서 일단 괜찮다고 말한 자음에 타인의 반응을 살핀다면 당신은 복종 시나리오에 지배받는다고 할 수 있다. - P78

당신이 괜찮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한 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감정과 욕구가 정말로 괜찮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습관적인 두려움 때문에 나의 감정과 욕구를 숨기려는 것은 아닌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얘기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힘들지?", "걱정했지?" 하면서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쉽고, 안타깝고, 답답한 지점도 나만안다. 나만 아는 것에 관해서는 소리 내어 말해야 한다. - P79

대개 건강한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따로 있고 그 경계가 분명하다. 이것은 친밀감과는 다른 개념이다.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부모가 자녀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고, 자녀도 부모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부모는 지붕과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자녀는 그 아래에서 안전하게 제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자란다. - P87

정체감이 흐려지면 진정한 의미의 친밀감을 만들기도 어려워진다.관계는 거울속 나와의 대화에 토대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본 적이 없으면 상대와 동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항상 자신이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희생을 자처해서 억울해질 수도 있고,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 P89

책임은 필요하다. 그러나 각자의 몫을 잘 구분해야 한다. 지나친 책임 의식은 과도하게 통제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사전에 손을 쓰면 문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넘은 책임감은 수시로 자신을 죄책감의 늪에 빠트린다.
강력한 해결사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처리하면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인에이블러enabler‘라고 일컫는다. 자신은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망치고 있다는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 P93

외국어를 연습하듯이 말도 연습해야 한다. 슬픔과 좌절을 드러내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위로받는 경험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 - P95

현재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멈추거나 노력의 방향을 바뭐야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때인지 모른다. - P100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에 집착할수록 정서적인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 안의 것을 소진하여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때문이다. 환호와 박수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외로움과 허무함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 - P101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본래 성향대로 행동할때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아갈 때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살려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 P105

자기감이란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때 자기감의 자원들이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상당히 고단해진다. 내 안에서 기쁨과 보람, 감사와 평안, 행복과 만족감을 만들 수 없다면 끊임없이 밖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외부상황에 따라 자존감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다. - P108

비관적인 자기감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에 집중할 수 없다. 내면의 안테나가 전송하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았는지, 내 말이 적절했는지 점검하느라 분주해진다. 스스로를 평가하고 탓하느라 대화에서는 소극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끊임없이 자신을 주목하고, 기다렸다는 듯 사소한 문제를 꼬집어 과장하고, 가혹하게 비판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 존재는 내면을 다 갉아먹는다.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불필요한 내전을 너무 많이 치러야 한다. - P113

결함 시나리오는 ‘나쁜 자기감‘을 느끼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
결함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가능성‘보다는 ‘문제‘와 동일시한다. - P115

여기서 먼저 명확하게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도록 과도한 비판을 받아왔다. - P116

우리는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고 실수를 한다. 여러 면에서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하다고 ‘문제적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존재being와 행동doing은 다른 차원에 있다. 생명을바라볼 때는 ‘부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봐야 한다. - P116

결함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결점이 많고, 열등하며, 무가치하다고 믿는다. - P117

당신이 결함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을 향한 비난을 멈추는 일이다. 오랫동안 설정되어 있던 자기 비난의 알람을 꺼야 한다. 자신을 모질게 평가해온 습관적 손가락질을 그만두고, 나머지 손가락을 마저 다 펴서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 P119

‘단단한 사람은 잘못했을 때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라고 말할 줄 안다. 그 말은 자신을 손상하지 않는다. 만약 잘못을 인정하면 지는 것 같거나, 강렬한 수치심과 억울함에 휩싸이거나, 자기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다면 당신에게도 결함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월이라는 가면 속에서 자신을 미워하고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나의 일면일지도, 당신의일면일지도 모를 일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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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커버 특별판, 양장)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2022년 올해의 책 리스트에 선정된 도서 중 하나이기도 하고, 추천받은 도서이기도 해서 급하게 주문을 하고 읽고 있던 도서들을 마무리 하자마자 읽었는데 다른 분들 말씀처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 받자마자 읽고 띄엄띄엄 읽다가 남은 부분 한번에 끄읕!

이 책의 작가님처럼 저도 인생에서 혼돈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떤 것을 동기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에 읽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듯 보였으나 반전이 있더군요.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을 것 같던 조던이 자기 기만에 빠져 혼돈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에 사로잡힌 것을 보고는 어쩌면 혼돈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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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다. 자기기만의 두꺼운 거품벽 안에 있으면 고통이 서서히 축적될 수 있다. - P148

바로 이것이다.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 골턴의 어리석음, 가난과 고통과 범죄가 혈통의 문제이며 칼로 잘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이 나라에서 우생학 이데올로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우생학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나라다. - P196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스한 느낌. - P207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그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늘어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그 비전을 수호한 이유를. 바로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나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 - P207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일이다.
아, 그것은 엉킨 실타래였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
복수를 하겠다고 나무로 기어 올라갔지만 높이 뜬 독수리라는 진실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진 파란 꼬리의 스킹크.
나는 오도가도 못하게 된 심정이었다. - P222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책을 읽는 당신(넘어지지 않게 꼭 붙잡으시라)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 P226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 P227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 P228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 P252

과학자들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 P267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 P269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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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알코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몸이 차가울 때도 따뜻하게 느끼도록 하고, 아무 근거 없이 기분 좋아지게 하며, 인격 수양의 핵심을 차지하는 제한과 자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은 자기 발전에 대한 저주라는 것이다. 자신을 정체시키고 자기 발달을 저해하고 도덕적으로 미숙하게 만드는 길이자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 P126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한 뒤, 분발을 요구하는 ‘카르페 디엠‘의 구호를 외치며 독자들을 배웅한다.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 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다." - P127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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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 P28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31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가시는 자신이 ‘퇴화‘라 부른 개념이 들어설 여지를 만들기 위해 종들의 순서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아주 살짝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피조물들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그 위치에서 떨어질 수 있으며, 나쁜습관들이 어떻게든 한 종을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쇠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 P48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 P57

나는 온순하고 음울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지나다니다가, 어느새 어떤 목적의 빛으로, 공기로, 빛나는 물질로, 뭐가 되었든 아무튼 그 목적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 P76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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