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치론을 전개했다. 일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활동하자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정치성과 사회성을 배제했다. 1920년대 이광수는 자치론을 주도하면서 민족주의 진영 분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상재, 안재홍 등이 비타협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했다면 이광수, 최린, 김성수, 최남선 등 자치론자들은 친일의 길로 나아갔다. 결국 이광수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해방될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를 앞장서서 홍보하고 선전했다. 징병 제도 실시를 환영했고, 영국과 미국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인들의 대표자격으로 각종 대회에서 중요 역할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