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신분석은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를 잘 중재하고 조절해서 건강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부모가 자신의 자아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적절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녀에게 부모는 벗어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들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 많다. 일명 ‘내로남불’이다. 자신의 경우와 다른 사람의 경우에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다르다 보니 이런 말까지 생겨났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중 잣대의 심리는 가족 내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이지만,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타인을 대하듯 존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만 혜택이 가고,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면, 온전한 가족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부모가 화가 났을 경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도 화가 나서 자녀들에게 버럭 화만 내고 끝낼 수도 있다. 부모 자신도 갈등을 다루는 데 미숙한 경우다. 갈등을 못 다루는 이유는 자신도 그렇게 양육받았기 때문이다. 부모도 차별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났기에 한쪽 편만 든다. 형이나 누나 또는 동생에게만 감정 이입해 자신이 직접 싸움에 참견하기도 한다. 이 외에 여러 이유가 있으나 부모 먼저 원인을 찾아 거기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독일의 교육 전문가인 하이데마리 브로셰Heidemarie Brosche는 자신의 저서 《비교하지 않는 습관》에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한다면 아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이자 교사이며 세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아이의 약점 속에서 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중심으로 본능과 쾌락에 충실한 이드와 도덕과 윤리와 양심의 원천인 초자아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정신세계의 기본 틀이라고 본다. 어느 한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과잉으로 기능하면 정신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작용으로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는 이론이다.

아이를 동기간 또는 남과 비교해서 약점을 야단치고 고치려 하기보다 내 아이만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는 부모의 지지 속에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한다.
좋은 부모는 아이를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개별적 요구에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모가 적절하게 반응하면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자신이 보호받으며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형성한다.

만약 부모가 자녀 간 갈등을 중재하기 어렵다면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너무 지쳐서 자녀의 싸움에 개입할 힘이 없을 수 있다. 싸움을 지켜보면서 인내하고 적절히 개입할 수 없기에 빨리 다툼을 끝내려고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심리는 부부 사이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받을 존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과 헌신에 소홀할 때 사랑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내가 사랑받을 때는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할 때뿐이다. 내가 싫고 힘들고 매사 손해를 봄에도 계속해서 배우자에게 맞추고 헌신을 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기에 부모 문제가 끼어들면 더욱 그렇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자식들이 부모 마음을 몰라주고 자기들 멋대로 살면서 부모를 외면하거나 무시할 때 부모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서글퍼진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구획된 성역, 다시 말해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다. 모든 존재는 언어에 의해 존재한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는 누구도 인식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며,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다.
또 영국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생각의 한계다.

결혼하고 나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마땅히 경제적, 정서적으로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당당한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두 번째 어머니를 찾고, 아내는 남편에게서 첫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라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공감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고 비극이 잉태된다.

양가감정은 ‘애증’으로도 설명된다. 부모와 자식은 애증관계이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언제라도 상처를 주고받고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관계이다.

말은 참 어렵다. 상대방이 내가 뱉은 말의 단어와 문장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뜻과 폭넓은 의미를 넉넉히 헤아려 주면 좋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까지 내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말 한마디도 편하게 뱉기란 쉽지 않다.

모든 원초적 배움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흘러간다. 부모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 부모가 몰상식하고 비양심적이며 반도덕에 기울어진 삶을 살았는데, 자녀가 자신과 정반대로 살아가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결혼하고 누구나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좋은 부모, 존경받는 부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내가 ‘바람 풍’ 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따라서 ‘바람 풍’ 하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부모가 자신과 자녀를 객관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가 형성됨에도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나 정서적으로 분리된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기를 어려워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녀가 엄마의 품속에서 안전한 것, 편안한 것, 풍요로운 것만 경험한다면 가족 외부에 있는 사회나 현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엄마 품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은 채 불안한 상태로 성장할 것이다. 경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계 밖의 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 처음 경험하는 거리 두기는 때로 위험하거나 무섭거나 사랑의 결핍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경계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혈육血肉 이라고 한다. 피와 살을 나눈 사이라는 뜻이다. 유전에 의해 세상에서 둘도 없이 나를 닮은 존재로 태어난 내 자식이고, 그런 나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내 존재의 원형이 바로 부모다. 이런 혈육 사이에도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상하고 상처를 주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먼저 보고 지적하지 말고, 잘나고 괜찮은 부분을 먼저 보고 인정하고 존중하면 어떨까? 존중을 앞세우면 부모 자식 관계가 약간 엉켜버렸대도 다시 예전처럼 붕어빵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배우자 중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양보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배우자도 타인이라는 생각이 답이 될 수 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이유다. 소중한 나의 타인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촌수로도 부부는 무촌無寸 이지만, 부모와 자식은 1촌一寸 이다. 일정한 마디, 즉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이다. 부부는 결혼하면서 운명 공동체가 되지만, 부모와 자식은 일정 기간만 같이 살다가 헤어져야 하는 한시적 공동체다. 그렇기에 서로 양가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잘 공존해야만 아름다운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다. 결혼 전에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결혼 후에는 달라진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된 자식들은 연로한 부모를 보며 한없이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 부모 또한 자신의 품을 벗어나 가정을 이룬 장성한 자식을 보며 품 안에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러한 마음을 배우자가 잘 헤아려 상대방 부모에게 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부당하고 불공평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게 대한다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고 심할 경우 배신감과 모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마음이 상할 수 있는 문제는 부부가 서로 정확하게 규칙을 명문화해서 정하는 편이 현명하다.

자녀가 자신을 닮으면 흐뭇하지만 나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을 닮지 않기를 소망한다. 자녀가 부모를 도와 가업을 잇겠다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뛴다. 나처럼 살지 말고 다른 길, 더 좋은 길을 찾아가라는 뜻에서다.

많은 부부가 결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음에도 여전히 결혼 전 부모님 가정에서 살아온 익숙한 방식대로 생활하려고 한다. 배우자가 자신과 사뭇 다른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면, 더욱 의견이 대립하고 충돌한다. 이런 상태에서 시어머니마저 개입하면 상황이 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말은 내 인격이며, 생각이며, 존재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 배우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타인이기도 하다. 내가 거칠고 독한 말을 퍼부으면 그 말은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타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 돌아올 반응은 뻔하지 않은가. 내가 곱고 예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그 말 역시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 부모가 소중하듯 내 배우자에게도 부모가 소중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에게 소홀하면 섭섭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에게 소홀하면 내 배우자도 섭섭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를 잘 공경하면 흐뭇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를 잘 공경하면 내 배우자도 흐뭇하다. 내가 좋으면 배우자도 좋고, 내가 싫으면 배우자도 싫다.

인생은 기분대로 살 수 없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다 보면 손해 보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부모는 부모이고, 나는 나’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 역시 자식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자식 또한 부모에게서 떠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품격 있는 언어생활을 하려면 문인이나 아나운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노력은 필수다. 좋은 책을 읽거나 신문, 잡지 등에서 멋진 표현을 발견했을 때 적어두었다 써먹으면 좋다. 노력 없이 거저 되는 일은 없다.
부부생활의 절반 이상은 말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말만 조심하고 잘해도 부부생활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생각할 수 없다면 말할 수도 없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기에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 내 생각의 범위는 내 언어의 범위와 정비례한다.
내 말의 품격은 곧 내 생각의 품격이며, 나아가 내 인생의 품격이다. 부부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는 부부생활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뱉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거침없이 구사하며, 수준 낮은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부부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기는 어렵다. 호칭과 말투에서 배우자를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를 부부가 풀지 않고 외면한 채 자식에게서 보상받으려 할 때, 부부 문제는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된다. 이럴 때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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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상에 선한 폭력이란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악이다. 요즘은 사라진 ‘사랑의 매’조차도 매를 드는 사람의 시각에서 나온 말이지, 매를 맞는 아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통의 매’일 뿐이다.

서열과 차별이 존재한다면 행복한 가정은 이루기 어렵다. 누군가는 힘들고 괴로운데 누군가는 편하고 즐겁다면 평등하지 않은 가족이고, 이런 가족 사이에 행복을 꽃피우기는 힘들다.

가족 안에서의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잘못된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 이럴 때 피해를 받는 다른 가족은 치명적 상처를 받는다.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는 씻기지도 않고 물릴 수도 없다.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아빠나 엄마, 또는 첫째 등 영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으려 애써야 한다.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 안에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폭력이 일어난다.

아동학대는 폐쇄된 가정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학대를 감당하거나 학대에 적절히 대처하기도 어렵다.

어떤 부모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부모의 말을 듣고 따르도록 강요한다. 심한 경우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나 노예처럼 취급하기까지 한다. 이토록 강압적인 훈육 방식은 지금도 남몰래 이어져 오고 있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참고 넘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전부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모두 가족 공동체의 한 일원일 뿐이다.

우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면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왜 아픈지, 어째서 힘든지, 아프고 힘든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확하게 직면해야 한다. 치유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정서적 학대와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의료진이나 전문기관에 구체적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원인을 출생 순서에 따른 특성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특성을 알아두면 개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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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독자들이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가족이라서 다 괜찮다’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 가족이니까 모든 문제에 개입하고 지적하고 충고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오판이라는 사실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가족이니까 상처를 줘도 이해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속상하고 잊히지 않는다. 남들 같으면 무시하거나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가족이라서 가슴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학교는 졸업하면 그만이고, 직장은 옮길 수 있지만, 가족은 바꿀 수도 끝낼 수도 없는 관계이기에 생채기는 점점 심하게 곪아 간다.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하는 연습을 위해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한다는 뜻은 가족관계를 혈연과 필연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고, ‘타인’을 대하듯 적당한 격식과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일종의 가족 간 ‘거리 두기’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말한다.
가족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환상을 깨뜨리고, 가족 간에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한 첫걸음이다. 희뿌연 안개가 걷히면 대상이 명료하게 드러나듯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하면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비로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해 지금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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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아직 5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어요." 에마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권위 넘치는 신탁의 말투도 아니었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의 확신 같은 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호소하듯이 말했다. 뇌를 다쳐서 오로지 숫자로만 말할 수 있었던 환자처럼. 에마는 내게 말을 하고 있다기보다, 이런 일을 진정으로 통제하는 힘을 가진 존재에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와 나는 근엄한 분위기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평범한 두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심연에 직면하여 한없이 위축된 한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루시와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울었다. CT 촬영 결과는 여전히 컴퓨터 화면에 떠 있었고, 의사로서의 내 정체성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암은 여러 내장 기관들에 침투해 있었고 진단은 명확했다. 병실은 조용했다.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끝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망하는 것(삶)과 확신하는 것(죽음)은 달랐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희망의 진짜 의미는 ‘헛된 소망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의학 통계는 평균 생존 기간 같은 수치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신뢰 수준, 신뢰 구간, 신뢰 한계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 수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도 측정한다. 그렇다면 ‘통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가능성 있는 결과, 즉 95퍼센트로 측정된 신뢰 구간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내게는 희망이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생존 곡선을 ‘패배’, ‘비관적’, ‘현실적’, ‘희망적’, ‘망상’ 등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을까?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던가? 우리는 모든 환자의 생존 확률이 평균 이상이라는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통계 자료와 나의 관계는 내가 환자가 되자마자 달라져버렸다.

아무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한 앞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다.

죽음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더 익숙해지기라도 할까?
불치병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로서 나는 "암이라는 전쟁에서 꼭 이길 거야!"라고 선언하거나 "왜 하필 나야?(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고 암에 걸리지 말란 법이 있는가?"이다)"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의료 행위, 그와 관련된 복잡한 일, 치료 공식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종양학 전문의와 상담하고 개인적으로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점은 1980년대 후반의 에이즈처럼 오늘날의 말기 폐암도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빠르게 진행되는 심각한 병이지만, 수명을 몇 년 더 늘려주는 치료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직접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문학 작품이나 학술적인 연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저술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풍부한 경험을 하고 충분히 사색한 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의사로서 나는 절대 환자가 혼자 결정을 내리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환자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때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인 내가 환자인 나를 책임지려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 신에게 저주받았을지 모르지만, 내 병을 나 몰라라 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무책임한 일로 여겨졌다.

내가 의사가 아닌 환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내 가족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약을 살 수 있는 계정을 만들고, 침대 난간을 주문하고, 타는 듯한 요통을 덜어줄 인체 공학 매트리스를 샀다. 며칠 전만 해도 내년엔 수입이 여섯 배 늘겠구나 예상하면서 세웠던 우리의 재정 계획이 이젠 위태로워 보였고, 거기에 더해 내가 죽은 뒤에도 루시를 지켜주려면 이런저런 새로운 재정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계획을 수정하는 건 병에 지는 거라고, 내가 어떻게든 병을 이겨내고 나을 거라고 말했다. 환자의 가족에게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해줄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달리 어쩌란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누군가가 내 신용카드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자금 계획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두 달 뒤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두 달 후에는 색소폰 연주를 배우거나 신앙생활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어느 순간 나는 약간의 협상을 시도했다. 정확히 말하면 협상이라기보다는 이런 식이었다. "하느님, <욥기>를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제 믿음을 시험하려고 이러시는 거라면, 제 믿음이 얼마나 약해 빠졌는지 이제 아셨을 겁니다. 저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에 매운 겨자가 빠져 있기만 해도 불경스러운 말을 뱉는 사람이니까요.3 하느님, 제게 이렇게 핵폭탄급 시련을 주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이렇게 협상을 하다가 분노가 치밀었다. "평생을 바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암을 주십니까?"
그리고 마침내 나는 부정, 그것도 전면적인 부정 단계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히포크라테스나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도 가르쳐주지 않은 뭔가를 배웠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한 무더기의 새로운 진통제가 처방되었다. 병원에서 절뚝거리면서 나올 때, 불과 엿새 전만 해도 수술실에서 거의 36시간 가까이 서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만 했다. 한 주 만에 이렇게 병약해진 건가?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36시간을 버티기 위해 요령을 부리기도 하고 동료 외과의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었다. CT 촬영과 검사 결과를 보면, 나는 암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몸도 거의 죽겠다 싶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이렇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으니 이제 나는 환자, 신경외과학, 선의 추구라는 책무에서 벗어나게 된 걸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에는 역설이 있었다.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나를 몰아붙이던 그 의무가 사라지자 나 자신이 어느새 병약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마치 있는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한 후 쓰러지는 달리기 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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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환자가 수술을 의사에게 위임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사전 동의는 신약 광고에 덧붙이는 해설처럼 모든 위험을 최대한 빠르게 줄줄 읊어주는 법적 행동이 아니라 고통 받는 동포와 굳은 약속을 맺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입니다. 여기 헤쳐 나갈 길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회복의 길로 인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즈음 나는 좀 더 유능하고 노련한 레지던트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조금은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내가 맡은 환자의 안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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