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그는 나이가 많아서 아픈 것과는 다른, 그 이상의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 P47

그 모든 상황에도 교수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친절했으며,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는 ‘죽어 간다‘라는 말이 ‘쓸모없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 P54

몇 주일 후, 외삼촌은 자신의 말처럼 정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갑자기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다. 하수구에 마구 흘러들어 가는 물처럼 시간이 쑥쑥 빠져나가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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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많은 생물을 굴복시키지만 사람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W. H. 오든(모리가 좋아하는 시인) - P37

맨 마지막 수업은 아주 짧았다. 겨우 몇 마디 말로 끝나 버렸다.
졸업식 대신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졸업 시험은 없었지만 배운 내용에 대해 긴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그 논문이 바로 이 책이다.
모리 교수님이 생애 마지막으로 했던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내가 바로 그 학생이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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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저에게 물어봅니다. 모리 교수님에 대해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신념을 그리워합니다. 삶을 고귀하게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의 웃음을 그리워합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 P18

그러나 역시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제가 그의 방에 들어설 때마다 저를 보면서 반짝이던 교수님의 눈빛입니다. 이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어쩌면 이기적인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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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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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믿어?
나는 믿지 않아.
전생에 한번은 폭사했다.
믿지 않는데 그렇게 믿고 있어. - P162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 P187

다시는 나나를건드리지 말라고 그 눈을 향해 말했다. 소라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한번 더 그렇게 하면 맛을 보게 될것이다.
어떻게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 P191

나나는 이미 건강해. 소라는 밥에 고등어초절임을 얹어 먹으며 투덜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그 사람들보다 나나가 훨씬 건강하다고 나는 생각해 누가 뭐래도.
나나는 건강해. 그리고 대견해 나나도 대견하고 나도 대견하고 나기도 대견해,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나나도 나도 나기도 편부모 상황에서 자랐잖아. 이 정도로 자랐잖아. - P200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날면?
피곤하지 않을까.
피곤해도 있지 않을까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 것이 세상엔.
있겠지.
그럼 이게 그거야. 그거로 하자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 것.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데 그런데 이건 뭐야.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이름을 붙일까.
붙이자, 나비와 나방이 전부 있는 것으로.
나비와 나방.
나방비 나비방.
나나비.
나비바.
나비바가 될까.
나비바가 되자.
나비바.
소라, 나나, 나기가 합체하면, 나비바. - P203

수줍은 듯 일렁이던 달을 생각하자 묘하게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구나, 생각합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은 이런 말이었구나. 여러개의 매듭이 묶이는 느낌. 가슴이 묶이고 마는 느낌. - P225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덧없고 하찮습니다. - P227

모두 잠들었습니다. 어둠속에서 그들의 기척을 듣습니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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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사진 속 애자의 나이가 되었다.
애자는 여전히 예쁘지만 더는 젊지 않다. 늙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늙었다기보다는 다만 말라가고 있다. 팔뚝이 말랐다거나 몸이 여위었다는 의미도 아니고, 애자의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비물질적인 부분이 마르고 있다는 의미다. 날마다 마르고 말라서 조그맣게졸아들었다. 애자가 양지바른 곳에 다만 앉아 있을 때 어깨를 쥐고흔들면 갈비뼈 틈에서 호두알 같은 것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구를것 같다. - P12

그건 아주 커다란 톱니바퀴였겠지?
커다란 것에 다른 커다란 것이 물려 있고 그 커다란 것에 다시 그보다 커다랗거나 그보다 작은 것들이 물려 있었겠지? 작은 것이라도 그건 단단했겠지? 크거나 작거나 모두 강철로 아주 날카로웠겠지? 그런 것들이 맞물리고 맞물려서 아주, 커다랗게 돌아가고 있었겠지? 커다랗고 복잡하게 - P24

그 빈틈없는 회전사이에서 시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렀는지도 몰라. - P25

그토록 빠르게 걸으면서 한순간도 뛰지 않았다. 뛰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랬다. 어떤 일이 벌어지려는 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지금 걷는 길 앞에 있었다. 그 일은 이미 벌어졌을 수도 있고 이제 막 벌어지려는 참일 수도 있었는데 뛰는 순간, 마땅하게 그렇게 되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버린 후엔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P29

아름답고 친절하지만 무기력하고 깊은 공허에 잠긴애자 곁에서, 나나와 나는 그녀를 방해하거나 귀찮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 P38

아침에 도시락을 세개나 준비하는 것.
그것도 일하는 사람이.
그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 P41

아침의 십분이란 오후의 십분과는 흐름도 의미도 완전하게 달랐던 것이다. - P42

무엇에 졌는지도 모르게, 완벽한 패배였다. - P42

순자씨는 그 도시락으로 나나와 내 뼈를 키웠으니까. 그게 빠져나간 뼈란 보잘것없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허전하고 보잘것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단하지 않아?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 - P44

그뿐이었고 그 정도나 되었으므로 대단히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P44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 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영역에서. - P45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 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 P45

보고 있는 것이 보일 뿐, 고요했다. 우산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우산일 뿐, 고요했다.
보고있는 내가 사라지면 우산도 사라질까. - P46

우산뿐이라면 그것은 좋을까.
애자도 나나도 나도 없이, 우산뿐인 세상.
고통도 뭣도 사라지고 오로지 우산뿐인 세상.
그것은 어떨까. - P47

다 달라, 사소하게도 다르고 결정적일 때도 다르지. - P53

별로 없어, 좋은 건.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하며 살아서는 안되는 거야.
기대하고 기대할수록 실망이 늘어나고, 고통스러워질 뿐인 거야. - P57

나는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생각건대 출산이란 무엇보다도 비명과 고통과 출혈이었는데 그런 이미지와는 일부러 다른 것을 고르기라도 한 듯 부드럽고 환한 그 공간이, 이제 와 말하자면 조금 불편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하다고 무책임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 P62

말 그대로야. 내버려둬. 싫으면 내버려둬. 싫으면 싫다고 차라리 말을 하든가 싫다고 하지 못하겠거든 내버려둬. 거짓말로 친절하게 대하지 마. 보살피려고 하지 마. - P78

나나는 걷던 것을 멈추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하니까 나는 굉장히 약해진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로워져.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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