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인 욕구의 적절한 한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비율, 각자가 원하는 만큼과 그 소유물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거대한 부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부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것으로 위로를 받지 못한다.

부는 마치 바닷물과도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에 시달린다. 이는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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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장소/강화도

김포를 마주하고 있는 섬. 강화도만큼 한반도 역사에서 각종 이야기가 얽힌 곳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와 조선 문화가 아름답게 절충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도 강화도의 사적이다. 이 근처에 각종 역사유적이 몰려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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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인물/이광수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치론을 전개했다. 일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활동하자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정치성과 사회성을 배제했다. 1920년대 이광수는 자치론을 주도하면서 민족주의 진영 분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상재, 안재홍 등이 비타협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했다면 이광수, 최린, 김성수, 최남선 등 자치론자들은 친일의 길로 나아갔다. 결국 이광수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해방될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를 앞장서서 홍보하고 선전했다. 징병 제도 실시를 환영했고, 영국과 미국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인들의 대표자격으로 각종 대회에서 중요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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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사건/독트린

독트린은 종교의 교리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한국 현대사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트루먼 독트린‘, ‘닉슨 독트린‘이 대표적인 예다.

1945년 해방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분단, 전쟁 그리고 냉전 다시 탈냉전까지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한사건들은 대부분 미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문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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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명문장/함석현

(...)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이 혁명을 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 못 한다.아무 혁명도 민중의 전적 찬성, 전적 지지 전적 참가를 받지 않고는 혁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재가 있을 수 없다. 민중의 의사를 듣지 않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성의로 했다 하여도 참이 아니다. 또 민중의 의사를 모르고 하는 것이 자기네로서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또 사실 민중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은 성의는 아니다.
(…) 그러므로 민중을 앞에 두지 않고 꾸미는 혁명은 참 혁명이 아니다. 반드시 어느 때 가서는 민중과 관계가 나빠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즉, 다시 말하면 지배자로서의 본색을 나타내고야 만다. 그리고 오래 속였으면 속였을수록 그죄는 크고 그 해악은 깊다.

1961년 함석헌(1901년~1989년)이 <사상계>에 쓴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의일부다. <사상계>는 1960년대를 상징하는 잡지로, 초기에는 의외로 5.16 군사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봤다. 6월호 권두언에는 "5.16 군사정변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일찍이 군사쿠데타의 위험성을 비판하며 혁명성을 부정했다. 함석헌은 박정희 정권은 물론 전두환 정권과도 싸우며 한국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다. 또 ‘씨알 사상‘을 비롯한 독특한 사상 체계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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