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는 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 아이들, 그토록 충실한 나의 반려, 나의 일"이라고. 이 대목을 길잡이 삼아 나는 한 사람의 생으로 들어갔다. 케테는 격동의 시대에 성장했다.

‘그토록 충실한’ 반려인 남편이 무료 진료소에서 일하는 의사였기에 케테의 생활도 하층민의 삶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가까이서 제대로 보았다. 그래서 민중을 지배당하는 대상에만 가두지 않고 억압을 뚫고 살아내는 역동적인 존재로 표현했다. 인생에는 유쾌한 면도 있는데 왜 당신은 비참한 것만을 그리는가 하고 묻는 이에게 케테는 답했다. "나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확히 말해두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에 동정하거나 공감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서 단순 명쾌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유언처럼 남긴 석판화의 제목은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다. 우리는 전쟁터에 보내려고 자식을 낳은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케테가 전쟁이 끝나는 걸 못 보고 숨을 거둔 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적이 있었던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 두지 않는 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그때마다 씨앗들이 가장 먼저 제일 쉽게 무참히 짓밟혔다. 세르비아 속담대로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녀를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녀의 무덤을 찾아간다.
‘나의 아가야, 봄이 왔다’는 케테의 속울음이 판화처럼 복제되고 있다. 이 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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