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인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가 어떤 사실을 정신적으로 지각하면 그것에서 감정이 생기고 육체적 표현이 뒤따르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를테면 나쁜 일을 당하면 슬퍼서 울고 곰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몸을 덜덜 떨고 도망치기 때문에 무서워진다. 신체 표현이 없다면 지각은 흐릿하고 색도 없고 감정적 온기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나의 계절도 가을이다. 낮이 점점 짧아지고 총기도 사그라진다. 심장이 덜컹거리고 감정은 둔탁하다. 가을은 시들고 이우는 계절이지만, 무성한 잎을 내주는 대신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하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쓸모가 있는 계절이다. 그래야 하는데, 어느덧 시대가 바뀌었고 내가 지금껏 축적해 온 지식이 무용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요새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50년을 살았는데, 다음 해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처럼 많이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인지 모른다. 나이 든 사람은 닥쳐오는 어두운 겨울을 애써 들여다보는 대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이 가을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서 아직 어린 것들을 거두어 건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