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사람은 섣불리 충고하지 않는다. 어제까지 좋다고 생각된 것이 오늘은 싫을 수 있고 오늘까지는 옳다고 생각된 것이 내일은 틀리게 여겨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이 충고하고 싶은 마음을 앞서는 사람이 있다. 이들 주변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 모여든다. 스스로를 타일러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데 매진할 뿐 남에게 충고하지 않는 일. 남의 거슬리는 점을 바로잡기보다 갈등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에 평화를 추구하여 세상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일. 비록 용모는 추했지만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능력과 덕은 이러한 애태타의 정신에 있었다. 충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한 번쯤 애태타를 떠올려 보자. 지혜롭게 관계 맺는 첫걸음이 될지 모른다.
좋은 관계를 많이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좋은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人間은 ‘사람 사이’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좋았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던 사이가 어떤 계기로 호전되기도 한다. 결국 행복이란 좋은 사이를 얼마큼 잘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때때로 지나친 관심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문제시되는 스토킹이나 가스라이팅, 그루밍 성범죄도 왜곡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다. 장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다름을 인정하면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깨닫게 된다. 사실 세상엔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별의별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일 뿐임을. 이상한 사람이 많은 세상엔 좋은 사이가 드물지만 이해하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엔 나쁜 사이가 드물다. 나를 너로 만들고 너를 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각기 다른 너와 내가 모여 우리를 이뤄 가는 것이 제물齊物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인仁이란 사람?둘二이 함께 잘 있는 것이다. 먼저 너와 나 두 사람이 잘 있어야 우리도 잘 있을 수 있다. 공자가 솜씨 있는 말과 꾸며진 얼굴빛을 경계한 이유는 이 두 가지에 욕심이 담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리나 신뢰 등 나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설 때가 있다. 욕심을 따르는 말솜씨는 나도 모르는 새 좋아지고 얼굴빛은 자연스레 꾸며진다. 반면에 실천을 따르는 말과 얼굴빛은 자못 양심적이다. 양심이란 늘 인仁한 마음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을 때 함부로 약속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좋은 기분에 말은 유창해지는 반면 실천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되 실천에 힘쓰는 일.
공자가 말하는 중간 이상 되는 사람과 장자가 말하는 함께 갈 만한 사람은 적어도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 중간 이하 되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란 귀로 들리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다. 들리는 것만이 전부라는 말은 곧 내 마음대로만 듣겠다는 말과도 같다.
서로의 수준을 알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고 특히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동양에서 듣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문聞이다. 이는 귀로 들어오는 모든 소리를 그저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다. 둘째는 청聽이다. 이는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셋째는 경청傾聽이다. 이는 마음을 기울여 상대방의 말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들리는 대로만 듣는 것은 귀가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 깊게 듣고 마음을 기울여 알아차리는 것은 상대방의 진정眞情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다. 진정이란 진실하고도 애틋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상대방의 진정을 알기 위해선 내게도 진실하고 애틋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민함은 잘 다루면 좋은 감정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나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무서운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민해지기 쉬운 날엔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예민할수록 주의 깊게 듣고 마음을 기울여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중간쯤 이상 되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 갈 수 있다.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지는 나 스스로가 함께 갈 만한 사람인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상호 신뢰는 때때로 도저히 안 될 것만 같은 일을 성사시킨다. 믿음 없이는 아주 작은 일조차 실현될 수 없다. 먼저 스스로를 믿고 나를 믿듯이 남을 믿어 주는 일. 남에게 받은 믿음으로 다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일. 어쩌면 우리의 예민함은 세상을 향한 신뢰를 재정비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바보처럼 서로를 믿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믿음이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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