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고 말로는 뜻을 다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뜻을 알아차리는 데 집중할 뿐, 자신의 뜻이 상대방에게 글이나 말로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글이나 말로 오롯이 전달하고자 헛되이 힘쓸 뿐, 상대방의 뜻을 알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22라고 하였다.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기한 변화를 이루어 낼지 추한 변화를 이루어 낼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해진 정답을 찾아 방황하는 삶에는 비교와 경쟁만이 난무할 뿐이다. 결국 힘센 사람의 말과 행동이 정답 행세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나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남의 답안을 깔아뭉개는 수밖에 없다.
반면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삶에서는 점차로 삶의 의미가 확장되고 자기만의 가치가 창출된다. 이런 시스템 속이라면 각자의 해답이 공존하며 상생할 수 있다.

글은 손끝에서 나오고 말은 입에서 나오며 뜻은 마음에서 나온다. 정성스러운 뜻 앞에서 유창한 말은 무력하며, 간절한 말 앞에서 유려한 글은 무력하다. 그러므로 무기력할 땐 말이나 글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처럼 나의 마음에 주목해 보는 것도 좋다. 내 마음의 느낌과 뜻은 오직 나 자신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맑은 물도 고여 있으면 썩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멋진 돌도 구르지 않으면 이끼가 낀다. 변화는 세상 만물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는 아무리 좋은 인성을 타고났더라도 끊임없이 인격과 인품을 갈고닦지 않으면 불선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쪽으로 변화할지 아니면 나쁜 쪽으로 변화할지 그 방향성뿐이다.

삶, 특히 관계에서의 본질은 글과 말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좋아야 남들과의 관계도 좋을 수 있다. 나와 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나 자신 하나뿐이다. 마음이 비슷하더라도 결코 말은 같을 수 없으며 말이 비슷하더라도 결코 글은 같을 수 없다. 하루쯤은 오롯이 내 마음의 뜻에 집중해 보자.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관계들이 신비롭게 풀어지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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