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좁고 불편해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 보면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더라도 왜 왔냐, 뭐하러 왔냐 따지지도 타박하지도 않고 온전히 등을 토닥이면서 반긴다. 억압당하는 듯하고 족쇄 같아서 떠나고 싶지만 떠나 보면 한없이 그리워지는 곳이다.

우리는 개개인이라는 타인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관계는 핏줄로 이어진 관계로도 분류된다. 부부관계는 핏줄보다 더 진한 유일무이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어떤 관계보다 가족애와 부부애가 우선시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내 지친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손가락질할 때,
아무리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이불 속에서 혼자 눈물로 베개를 적실 때
간절히 생각나는 사람은 가족이다.
행복이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다면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가족관계야말로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사랑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희생과 통제를 강요하고, 강요당함으로써 외로움만 남는 불행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가족애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만들려면 중심을 잡고 나만의 자유를 누리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사랑과 행복.
인생에 사랑과 행복을 빼면 대체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역경과 실패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뜻한다. 인생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가도 다시 치고 올라가는 힘, 맨 밑바닥까지 떨어졌더라도 재차 꿋꿋하게 튀어오르는 능력이다. 물체마다 각기 탄성이 다르듯 사람의 마음도 저마다 탄성이 다르다.

회복탄력성 지수는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자기조절 능력’, 주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인관계 능력’,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습관인 ‘긍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가족끼리 소통이 왜 이렇게 힘들까?
너무 편하고 가까운 사이다 보니 상대방이 나를 먼저 이해해주고 내 말을 들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수평적 관계여야 한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 사이에 질서가 있지만, 수평적 관계 속에 질서를 유지한다. 명령과 복종이 수반되는 수직적 질서가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마음의 높이를 수평적으로 맞추는 수평적 질서이다.

가족 안에는 공감Empathy이 필요하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거나 그렇게 느끼는 기분을 의미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진정한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

공감은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한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눈과 마음의 높이를 맞출 수가 있다.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공감의 출발이라는 이야기다. ‘나와 다르네?’ 하고 배척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가족 간에도 똑같다. 피를 나눈 관계이자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라 해도 나와 타인은 다르다고 인정해야 한다. 가족도 타인이다. 닮은 점이 발견되면 공감하면서 더 잘 어울리고, 다른 점이 발견되면 그걸 받아들이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난다.

가족애는 혈연에 의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공감을 통한 소통이 쌓였을 때 만들어진다.

흔히 언제 못 보게 될지 모르니 볼 수 있을 때 더 잘하라는 의미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한다. 살다 보면 이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내 곁을 떠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기꺼이 내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아내가,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남편이, 늘 내 편이 되어 주는 아빠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내 생각부터 하는 엄마가, 나를 쏙 빼닮아 볼 때마다 신기한 잘생긴 아들이, 시집가지 말고 영원히 내 옆에서 살았으면 하는 예쁜 딸이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 인사도 없이, 편지 한 통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언젠가는 잘하겠다면서 미뤄둔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고, 행동해야 사랑이다. 표현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나중으로 미루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이 굉장히 긴 듯하지만,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남편과 아내가 옆에 있을 때,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실 때, 아들딸들이 내 눈에 보일 때, 형제자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 즉시 표현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너를 믿는다고, 네가 있어 행복하다고······. 이 말과 행동을 내일로 또 미룬다면 후회와 낙담으로 밤을 지새우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과 행복. 인생에 사랑과 행복을 빼면 대체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행복을 꼽을 터이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도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서 추구한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 주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부로 재단하고 강제할 권리 역시 없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릴 권리 또한 당연히 없다. 내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다.

가정은 행복을 배우는 학교다. 행복을 느끼면서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고 어떤 행복을 추구할지를 꿈꾼다. 부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녀는 행복을 배운다. 부모는 일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정은 그를 배우는 공간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얼마든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가정의 역할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대화를 길게 한다고 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가족 간의 사랑이 깊어지지 않는다. 자주 만나고 밥상을 마주할 기회가 빈번하다고 해서 정이 쌓이고 공감대가 넓어지지도 않는다. 가족 간의 적정한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이다. 마음의 적정 거리가 잘 유지되면 물리적 거리도 자연스레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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