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향을 떠나던 날 외조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얘야! 언제든 돌아오너라!"
흩어졌던 기억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버드나무 아래 서 계시던 외조부의 그림자가 눈앞에 일렁였다.

외조부는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유교적 관습이 뼛속 깊이 새겨진 옹골진 선비였다. 굶어죽어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할 분인데 어찌어찌 외손녀인 나를 떠맡게 되었다. 당연히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유년기의 내가 외조부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있었다.
"이 변변치 못한 것."
외조부는 내가 반찬 투정을 하거나 신을 뒤집어 벗어놓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호랑이 눈을 뜨고 야단을 치셨다.

그러나 외조부가 나를 미워하신 것만은 아니었다. 샛강에 빠져 죽다 살아난 날도, 열병에 걸려 먹은 것을 게워내고 앓아누운 날도 외조부는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방문 앞을 오가셨다. 병을 털어내고 밥상에 앉으면 외조부는 또 혀 차는 소리로 퉁바리를 놓으셨다. "이 변변치 못한 것."
그러면서도 굴비 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주셨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행사에 모두 참석해주셨다. 다른 사촌들과 날짜가 겹쳐도 예외 없이 내게 와주셨다.

열여섯 살의 화창한 여름날. 나는 쪼그라든 외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빌었다. 외조부 말씀대로 변변치 못하게도 눈이 멀어가고 있다고, 정말 방아깨비만도 못한 손녀가 되어버렸다고 아뢰었다. 노쇠한 심신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생때같은 혈육의 캄캄한 현실 때문이었을까. 외조부는 슬픔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목놓아 우셨다. 이윽고 고향을 떠나 도시의 장애인학교로 떠나는 날이었다. 외조부는 버스 타는 걸 보겠다며 굳이 신작로까지 따라 나오셨다. 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서자 외조부는 내 팔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얘야! 언제든 돌아오너라!"
나는 차마 외조부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외조부는 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다 핑계였다. 마른 쭉정이처럼 쇠약해진 조부를 나는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나의 외조부는 호랑이 눈을 치켜뜨고 벼락같이 호통을 치며 본향 집을 지키셔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명, 말 그대로 맑고 푸른 봄날에 나는 귀향길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향했다. 길은 넓어지고 싸리문 담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공기의 질감이, 발끝의 감각이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터가 되어버린 본향 집터 앞을 오래도록 서성였다.
외조부가 없는 고향은 낯선 언어로 듣는 익숙한 노래처럼 어색하고 괴기스러웠다. 외조부가 지키지 않는 고향은 더는 본향이라 할 수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외조부 앞에 포와 술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방아깨비만도 못한 외손녀는 용서를 비는 대신 열 살 계집아이로 돌아가 낮잠이 드신 외조부께 다라니경을 암송해드린다. 외조부는 찔레꽃 향기가 되어 내 손등을 도닥여주신다.

"너 그거 생각나네? 학교 다닐 때 네가 안마원에서 아르바이트 갔다가 초콜릿을 받아왔는데 우리 딸 갖다주라고 나한테 줬잖아. 난 그걸 날름 받아다 내 새끼 가져다줬는데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너무 철딱서니가 없던 거 있지. 너도 열아홉 어린애였는데 내 새끼 준다고 그걸 받아왔으니!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또 한편으로는 네가 그리 안됐더라! 난 네가 애 어른인 게 싫다."
나도 언니도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서로의 마음이 들려왔다. 우리는 연민으로 연결된 모녀지간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만두를 빚는 언니의 등에다 물었다.
"언니는 후회 같은 거 없어?"
"있었지! 근데 지금은 없어. 일이 벌어졌는데 후회는 해서 뭐 하겠네. 모두 내가 선택한 건데. 난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눈 먼 마누라 안 버리고 살아주는 남편도,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다 고맙다."
문득 언니가 많이 늙었구나 싶었다. 형부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언니는 마사지 교육을 받고 취업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친정어머니와 아픈 오빠까지 봉양하고 언니 손으로 상을 치렀다. 내년이면 언니도 환갑이다.
"내 눈에 박사, 너는 늘 열여덟으로 보인다. 어린데도 돈 벌어 집에 빚 갚아줘야 한다고 동동거리던, 우리 학교 아이들이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맞고 오면 빗자루 들고 황소처럼 뛰어나가던 어른 같던 아이. 난 네가 나한테는 어리광도 피우고 떼도 썼으면 좋겠다."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눈물 스위치가 툭 하고 켜질 것만 같아 객쩍은 농담도 할 수가 없었다. 바오쯔가 다 쪄졌는지 언니가 뚜껑을 열어 김을 날렸다. 찜솥에서 바오쯔를 꺼낸 언니가 입으로 호호 불어 식힌 뒤 내게 가져왔다. 나는 뜨거운 바오쯔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뜨겁다, 식혀서 천천히 먹어라!"
결국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르 흘렀다.
"뱉어라, 뱉어! 울 정도로 그렇게 뜨겁네?"
언니가 내 입 앞에 손을 가져다댔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크게 베어 물었다. 소에서 나온 육즙이 입가로 흘렀다. 나는 손으로 입가를 훔쳐가며 맛있게 바오쯔를 먹었다.
"울 정도의 맛이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히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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