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형편이니 그가 오면 직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썼다. 마사지할 때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필요한 대화 이외에 말을 건네서는 안 되었다. 왼쪽 어깨 능형근을 30분 이상 풀어야 하며, 마지막 10분 동안은 두피 지압을 원했다. 마사지가 끝날 때쯤이면 그는 깊게 잠이 들었다. 그러면 마사지사들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나와 시술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아주었다.

그가 노쇼 손님이 자주 있냐고 물었다. 나는 캄캄한 두 눈을 껌뻑대며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사지사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러하다고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마사지에 집중하려 했는데 그가 또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예약금을 미리 받아놓아야 한다며 신용 없는 사람들은 ‘금융 치료’가 정답이라 조언했다.
나는 남자가 대신 화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하겠다 대답하고, 몸이 아직 긴장 상태니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이완시켜보라고 주문했다. 그가 내 말에 따라 몸을 늘어뜨렸다. 나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경직된 근육에 지압을 하고 굳은 관절을 스트레칭했다. 잠든 줄 알았던 그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취한 사람의 넋두리처럼 나약한 마음을 꺼내 보였다.

남자를 시술실로 안내했다. 그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접수 직원이 내게 다가와 오늘따라 남자의 인상이 더 험악해 보인다고 속삭였다. 밤이라도 새고 왔는지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사람 잡아먹게 생겼다고 겁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목덜미를 문지르며 시술실로 들어섰다.

예약 스케줄에 그 남자의 이름이 있다 하면 그날은 직원 모두가 긴장 상태로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그는 사자 갈기처럼 어깨까지 자란 풍성한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숍에 들어선다. 희끗희끗한 수염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으며 항상 인상을 찌푸려 고약한 성격임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깡마른 몸이지만 목청은 어찌나 쩌렁한지 소리라도 지를 때면 창문이 깨져나갈 것 같이 우렁찼다.

어제 그는 비행기로 15시간 떨어진 다른 나라에 있었다. 갑자기 잡힌 출장으로 밤을 새워도 업무는 줄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귀국하면 바로 마사지를 받으며 몇 시간은 죽은 듯 자겠다’는 의지로 스케줄을 견뎠다고 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보다 마사지 숍을 더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 순간은 고된 삶을 보상받는 시간이라 했다. 사자처럼 사납고 강한 사내라 생각했었는데 그에게도 나약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약간은 그와 친밀해진 기분이었다. 서서히 수마가 그를 끌어당겼다. 졸린 목소리로 그가 힘겹게 말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에게 듣는 감사 인사가 퍽 감동적이었다.
그의 고른 숨소리가 시술실 안에 퍼져나갔다. 나는 담요를 살짝 덮어주고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두피를 지압했다. 그가 깊게 잠이 들었다.

나는 직업 교육을 받고 바로 취업했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마사지사라는 직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의무였다. 서비스 업종의 특성상 마음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나는 내 직업이 내세우기 좋은 번듯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창피했다. 그러다 고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찡그린 얼굴로 들어왔다가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이들을 보며 내 직업에 조금씩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몸을 만지는 일이 더이상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고객들을 대하자 일이 즐거워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다.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마사지를 마치고 소리 없이 시술실을 나와 문을 닫아주었다. 앞으로 몇 시간, 사자는 정신없이 잘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힘을 내 하루를 살아가겠지.
나도 다시 힘을 냈다. 그러고는 다음 시술실의 문을 열었다.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온 나라에 여행 붐이 일었다. 한두 번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들을 경험하자 나도 여행의 즐거움에 빠졌다. 내게는 시간도 돈도 있었다. 문제는 홀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이런 것이다.

진정한 배려란 뭘까.
나로서는 항공기 승무원의 응대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내게 따듯한 타월을 건네거나 혹은 필요한 게 있는지를 물을 때 그녀는 항상 내 손등에 자기 손을 살며시 올려놓고 말을 했다. 특별히 상냥한 목소리를 하거나 말을 길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손의 언어를 통해 나는 그녀의 진심을 건네받은 느낌이었다.
가이드 손에게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우리에게 말할 때 그는 당사자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진정한 여행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한 여행의 기록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길에서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 여행 아닐까?
가이드 손의 마지막 인사가 생각난다.
"여러분이 무사히 타이완을 떠날 때까지 난 이곳에 있을 거예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전화 줘요."
공항 직원에게 우리를 인계하며 그가 말했다. 천천히 걸어 출국장에 들어갔다. 가이드 손의 시선이 오래도록 등에 와닿았다. 감정이 울컥 복받쳤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수화물을 찾고 택시를 탔다. 가이드 손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응답 메시지를 보냈다.
내 장애인 동료는 앞도 못 보는데 바다든 산이든 집이든 장소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여행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는 만큼 넓어지고 느껴본 만큼 인생이 풍요로워진다고, 꼭 제대로 된 자신만의 여행을 경험해보라고 그에게 권했다.
타이베이로의 출발, 그것은 왜 우리끼리는 안 되냐는 반항심에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글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거절과 더 많은 모욕과 조롱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행복은 바라는 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과 의지로 맺는 열매 같은 것이라는 걸 나는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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