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끝까지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신경 쓰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남을 얻는다.

충만한 자신감과 과잉된 자의식의 차이는 한끗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본인 인생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스스로를 구할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굳게 믿고, 그걸 묵묵히 행동으로 증명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자 남에게 자신감을 조용히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조용히 내 안에 머물 때는 자신감이지만 그 욕구가 세상 바깥으로 자꾸만 흘러넘치면 자의식이 문제를 일으킨다.

조금 더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유럽 사람들의 삶을 보며 자주 느낀다. 이곳 사람들은 참 ‘가볍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결의 가벼움이다. 모든 일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심각한 일조차 유머로 녹여낸다. 하나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기에 번아웃도 덜하다. 남은 에너지는 문화나 예술 활동에 쓰고, 그 속에서 다시 영감과 활력을 얻는다.

내가 바라는 그것이 정말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따라 나도 욕망하고 있었던 것인지. 기쁨과 만족을 채우려는 몸부림이 알고 보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무한한 공허함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했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가 통제 가능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에 대한 구분이다. 결과에 따른 감정이 ‘그건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어’라는 좌절감과 박탈감인지, 아니면 ‘에이, 아쉽다. 다음엔 이런 방법으로 하면 조금 더 나아지려나?’처럼 희망이 곁들어진 아쉬움과 미련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손으로 잡을 것. 그 외의 것들은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애초부터 에너지를 쏟지 않을 것.

Nonchalance. 직역하자면 ‘태연함’으로, ‘필요 이상의 애씀을 보이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으름과는 다르다. 오히려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고, 나머지는 흘려보낼 줄 아는 고요한 자신감에 가깝다.

욕망을 구분하기 위해 조금 더 쉽고 익숙한 개념을 하나 빌려오기로 했다. 언제나 인기 키워드로 꼽히는 ‘자존감’.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고 한다. 매일 아침 30분씩 책을 읽거나, 일주일에 세 번 운동하기처럼 스스로 정한 성취 기준에 도달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을 꾸준히 축적해나가는 내적 방법. 그리고 타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외적 방법.

어쩌면 진짜 필요한 건 생각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붙잡지 않는 일일지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보이는 대로.

어쩌면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내 마음 어딘가에 패여 있어,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내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였고, 그 감정을 내가 어떻게 다뤘는지였다.

더욱 적응이 되지 않았던 건 레스토랑에서의 주문이었다. 한 번쯤은 ‘유럽 여행 때 참고해야 할 주문 에티켓’이라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꽤 골치 아파진다. 여행자로서야 어차피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체험하러 간 것이기에 그 불편함이 신선함으로 가려질 수 있다.하지만 나는 이 불편을 하루도 빼지 않고 날마다 겪어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산뜻할 수 있는 것일까? 별것 아닌 일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낼 구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거운 일로 마음이 힘든 날이 오면 유튜브에서 우주의 광활함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며 마음을 추스리는 것일까? 본인이 얼마나 이 세계에서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어 매 순간을 유쾌하게 보내자고 되뇌는 것일까? 다음번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들을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너의 가벼움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어울려 사는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비교와 경쟁의 심리를 완전히 배제한 채 살아가긴 어렵다.

대표적인 또 하나의 ‘느림’ 문화. 이곳은 집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열쇠를 사용한다. 맞다. 우리가가끔사용하는 그 열쇠.

그러니, 지금 그게 잘 되지 않는 당신이라면 잠시 멈춰 스스로를 바라보자.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인정하고, 다정하게 토닥이자. 혹시 또다시 실패하더라도 묵묵히 일으켜세워주자.

아마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그리고 그게 바로, 자기만의 방을 완성해가는 어른들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내 선을 넘은 것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순간 스스로가 내 선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계획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인생은 무거워진다. 쉽게 움직일 수 없으니 도전이 어려워지고, 미리 세워둔 계획에서 벗어나면 마치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그 순간부터 자연스러움은 사라진다.

그 방어막이 무너졌을 땐 어떻게 나를 다시 회복시켜야 할까. 여기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누군가 당신의 선을 무시하고 들어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나간 뒤, 정작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적이 있다면 자책하지 말자.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예측했던 결과를 맞이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 비율이 반대의 비율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여기서 ‘그럴 수도 있지. 뭐, 오늘은 대충 먹자’가 되면 그 상황에서 빠르게 빠져나와 기분이 상할 일이 없다. 하지만 나는 꽤 오래 그 간단한 요령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게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거워서였다. 계획을 짜고 결정을 내리는 그 단계에서의 태도가 무거워질수록 기대감은 저절로 커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삶에 자유를 추가하는 데에는 대단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곳에서 새삼 배웠다. 오히려 별것 아닌 일상의 한 장면들이 내 안의 숨통을 조금씩 열어준다. 그러니 나부터 잠깐 멈추고 비워내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그게 결국 나를 살리고, 언젠가 누군가와도 조금 더 여유롭게 웃으며 만날 수 있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사실 진짜 중요한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남과의 여유를 만들어보려면 일단 나부터 여유로워야 한다. 그 시작은 아마도 비우는 연습일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것. 스마트폰만 보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보는 일. 다이어리와 펜만 챙겨 카페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일….

난 그들에게 조심스레 조언을 구해봤다. 지금의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는지 말이다. 조심스레 입을 연 그들의 대답은 ‘돌아올 수 없는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라’였다. 언뜻 들으면 식상한 메시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경험담을 직접 통해 들으니 새삼 와닿았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조언과 오지랖 사이 어딘가에서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나를 사랑해서, 혹은 나에게 중요해서 그 선을 넘는다. 하지만 그런 이유조차도 잠시 미뤄둬야 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만의 선을 그어보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균형일 것이다. 내적인 욕망을 무시하지도 말고 외적인 욕망에 휘둘리지도 말 것. 그 욕망이 내 삶을 이끌 수 있도록 다듬고 조율하되, 이와 동시에 그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태도를 갖기. 포기와 타협이라는 말을 밉게만 보지 말 것. 감당할 수 없는 노력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를 하지 말 것. 자신의 한계선을 곡예하듯 찾아갈 것.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되, 두 발은 땅에 단단히 붙이고 있을 것.

그저 내가 이어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의 속도로, 나의 방식으로 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고, 내 길을 그대로 가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머뭇거리고 말문이 막힐 것이다. 강하고 센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문득 그 단어가 ‘대충 살자’라는 말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들으면 책임 회피나 무성의함처럼 들리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대충’은 그게 아니다. 힘들이지 않는 우아함의 태도랄까? 필요 이상의 힘을 쓰는 순간, 삶의 결은 쉽게 투박해진다. 반면 조금 덜 신중하고, 조금 덜 계획하고, 조금 덜 애쓰는 태도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비워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시크함, 바로 그것이 ‘대충 살자’의 미학일 것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도달해보니 중요한 것은 얼마를 모았는지보다, 과거를 떠올렸을 때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였다고 고백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정작 돈으로 바꿀 수 없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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