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얼마 전에 읽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라며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 대가 없이 찾아온 이 계절의 즐거움을 나에게 선물해 주는 일, 그렇게 ‘내가 아는 행복’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 바로 제철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6개월은 참 길게 느껴지지만 정말 맛있는 수박을 먹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맛있는 포도를 먹으면 6개월도 금방이겠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정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일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서 먹어야겠다.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행복이 정말 별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거절을 마음에 쌓아 두며 일일이 카운트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한 거절할 만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꺼이 인터뷰를 허락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나는 백 명이 거절하든 천 명이 거절하든 그것을 카운트하는 데 마음을 쓰는 대신 인터뷰에 응해 줄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닐 것이다. 인터뷰를 거절한 거지 내가 거절당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피하거나 관계를 끊으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와 매일 마주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게 아니라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틀렸으니 고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러니 상대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되는 채로 그를 지켜볼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그날 저녁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큰 불운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이 나의 하루를 망치지 않게끔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면 그 말을 가슴에만 담아 두지 말고 그 사람에게 꼭 전했으면 좋겠다. 가깝든 가깝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해 주겠지 하며 그 말을 삼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멈춰 있는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지도 모른다. 관심과 애정이 담긴 좋은 말은 몇백 번을 들어도 좋은 법이다. 그러니 ‘나까지 그 말을 해 줄 필요는 없겠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힘내."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힘을 내야 하는 현실임을 더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 자각은 내겐 좋지 않았다. 눈물이 나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얼른 울음을 그쳐야 했고, 괜찮지 않은데 억지로 괜찮은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그 상황 자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장례식장에 가서 남겨진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순간에 연락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애써 어떤 특별한 말을 해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 순간 그 감정을 혼자 겪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면접에 떨어졌을 때나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면 ‘내가 뭐가 부족했던 걸까’ 곱씹으면서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은 우리를 짓눌러 위축되게 만든다. 그래서 거절의 순간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불필요한 오해에 갇히지 않도록 돕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다.

우리는 장애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무력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바라보기 쉽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시선이 그들에게 병보다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긴 시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우리의 일상을 채워 주고 있는 이웃들―세탁소, 정육점, 생선·야채·과일 가게, 슈퍼마켓, 빵집―의 존재를 말이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말했다. 절친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편의점, 카페, 분식집, 버스와 지하철, 아파트와 사무실 엘리베이터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경험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상대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소소한 말들과 작은 친절이 우리의 하루를 바꾸고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모모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재주로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모모처럼 해 보면 어떨까. 단 섣부른 충고나 조언을 해선 안 되고, 멋대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그저 가만히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럽게 잘 들어 주어야 한다. 그 전에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그를 위해 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 본다.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운이 좀 안 좋았던 것뿐이라는 그의 말이 병마와 싸우느라 지친 이들에게 꼭 가닿기를, 그래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상대방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바란다. 하지만 때로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이제는 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다 담을 길이 없을 때, 내가 가진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그저 더 못 줘서 안달 나고 상대방이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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