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점심은 거의 20년 동안 계속되어 내 삶의 고요하고 빛나는 지점이 되었다. 그녀가 날짜를 제안하면 나는 늘 그 시간을 비우곤 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 아, 우리 둘 다 나이가 들면서 ― 흔한 병과 작은 사고에 시달렸으나 늘 그것은 가볍게 넘겼다. 나에게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옷에서나 대화에서나 식욕에서나(소식이었다) 흡연에서나(굳건했다). 내가 도착하고, 그녀는 늘 이미 와 있고, 내가 앉으면 그녀는 묻곤 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져왔나요?" 그러면 나는 미소를 짓고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실패한 결혼과 성공한 자식과 옮겨 다니는 직업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소식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곤 했다. 그녀의 지적 관심은 시간을 초월했다. 그리고 늘 그녀가 점심값을 냈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별도, 소환도, 마지막 메시지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불평 없이, 스토아학파답게, 소리 없이, 거의 은밀하게 죽었다고 상상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이런 것이 수십 년 동안 오늘의 만트라 역할을 해왔다. 안이한 진술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historical 것이다. (또 개인적인 것은, 잊지 않기 위해 말해두는데, 히스테리적hysterical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것은 어떨까. "현재의 과제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과거를 교정할 수 없을 때 더 긴요하다." 이건 EF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또 지난 200년 내의 유럽의 어떤 철학자-역사학자가 한 말의 번역일 수도 있다. 어떤 항목은 한 문단 길이고, 어떤 것들은 한 페이지 길이고, 어떤 것들은 출처가 밝혀져 있고, 다수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스크랩, 또는 즉흥적인 기록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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