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타이밍을 놓친 관계의 응어리
with 자크 데리다

조건부 용서, 너의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

그래서 데리다는 용서의 본성이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도무지 용서할 수 있는 선을 넘었어도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이 용서라는 것입니다.

과감한 행동만이 전부일까

어쩌면 반복되는 나쁜 기억에서 나를 보호하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짓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제야 깨닫게 된 무엇인가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 응어리가 떠오를 때마다 다짐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전부가 좋지는 않았으나 그 안의 무언가만큼은 여전히 가치 있는 것으로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고요. 이제와 굳이 다시 꺼낼 수 없는 마음, 꺼낼 수 없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말이 나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내가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정작 그 본성을 나의 삶에서 실감할 수 있을 때는 용기라는 특성을 단지 간직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특성을 꺼내어 발휘할 때입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의 용기론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행동할지의 결단과 함께 용기가 발현될 때 비로소 용기가 내 삶 안의 ‘리얼’한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서를 위한 조건이 잘못된 것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용서를 조건과 한계가 있는 것으로만 생각할 때, 용서의 무게가 오히려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다는 점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온 관계에 대한 내 마음속 응어리가 과연 어떤 것이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나의 마음에 묻다, 전부 아니면 전무에 갇히지 않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대담함, 과감함과 같은 힘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인내심 곧, 절제의 능력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절제를 어떤 기준에서 발휘하면 좋을지 아는 일입니다. 결국 절제를 다스리는 기준을 제시하는 사고 능력, 그 기준을 아는 힘이 근본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용기에는 반드시 심사숙고가 필요하며, 심사숙고를 통해 서로 다른 능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관계가 남긴 흔적, 관계의 응어리는 감히 타인이 규정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는 너무 쉬웠던 한마디가 내게는 깊이 상처가 된 일도 있으니까요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일들은 비 오는 날이면 쑤시는 무릎처럼 이따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한편으로 진정 악의적인 말과 행동, 오직 나를 공격하고 상처 내기 위한 목적으로 던져진 것들은 아예 기억 저편으로 묻어버리려 애를 씁니다.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밉다, 싫다, 원망한다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꺼려진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은 것들입니다.

13. 취향에 도덕이 필수조건인가요?
with 임마누엘 칸트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우리 모두의 기억을 건드립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 경험했을 관계의 기쁨과 슬픔, 예기치 못했던 사건을 돌아보게 하지요.

우리가 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당신의 마음속을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자라면 당신의 마음속의 느낌을 일일이 조정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테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애매모호 걸쩍지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그 느낌이 ‘행동’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 마음의 응어리를 흘려보내고 놓아주고 싶어 할 때 반드시 우리가 알던 그 같은 용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요. 상대가 당신이 바라던 그 모든 조건을 채워도 용서할 마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상처 준 상대는 이미 스스로 자유로워졌고, 끝나지 않은 기억은 당신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용서를 구하며 바라는 것은 사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그래서 조건부 용서는 때로 하고 싶어도, 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조건부 용서를 하거나 받더라도, 어떤 응어리가 전부 사라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불-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용기는 동서철학을 막론하고 인간의 이성, 종합적 사고 능력처럼 인간이 본래 가진 자질로 생각되었습니다.

반드시 입을 열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내가 나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는 없고, 단지 누군가의 뒤에 서서 그 사람에게 동조하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될 때조차 나서기가 두려워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라서 내가 피해를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이 일을 모르게 될 때에도 두려움이 앞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만나고 헤어짐은 사람의 일이라, 별일 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별일인 줄 알았으나 지나고 나니 그다지 별일이 아닌 것을 알아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관계에서 생겨난 응어리가 가시지 않아 결국은 잘 되지 않기도 합니다.

영화 ‘우리들’ 이야기

지금에 와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은 아닌데, 여전히 마음에 남아 문득문득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들, 이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후회, 회한, 미련, 반성, 아니면 분노 혹은 원망일까요?

음악에 대해서 어떤 정서를 느끼는 일과 그 음악에 대해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좋은 일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문제 영역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용기 있는 행동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판단의 우선순위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판단을 모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그 판단은 동시에 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행동하겠다는 그 결단을 내리기란 어렵습니다. 우리를 슬프고 무력하게 하는 것은 내가 행동할 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른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용감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요.

우리의 평범한 삶, 평범한 관계에서 용서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약간의 가감과 번역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용기는 이미 있어요, 용기의 씨앗

지금 여기의 내 삶에서 용기를 ‘낸다’고 했을 때, 확실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일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마음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목적에 맞게 제작되는 시계와 다릅니다. 스스로의 결심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던지고 자기 인생에 직접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실존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용기의 본질’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구체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결국 마음의 용기를 현실이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구체적인 행동이니까요.

용기의 핵심은 위험을 무릅쓰는 대담함, 과감함에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부 다 허용하거나 전부 다 금지하거나와 같은 꽉 막힌 세계에 갇히게 되거든요.

14. 용기를 내는 방법
with 플라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가장 피해를 덜 보고, 어떻게 해야 가장 좋게 바뀌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어떤 것이 나의 마음에 의혹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씨앗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악행에 대해서도 결코 무감각하거나 참지 않는 일, 현실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등 욕망만을 쫓으려고 경거망동하지 않는 일부터요. 그렇게 생각하면 용기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며 여러 신호를 보내는 중입니다.

내 마음에 진실할 용기

마음의 거리낌을 느끼면서도 그 상태 그대로 머무는 일은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어떤 대답도 돌려주지 않고 나 자신을 방치하는 일입니다. 나의 의문을 무시하고 억누르는 일이죠. 내가 나를 상대해주지 않고, 내 마음을 내 삶에서 따돌리는 그 상태를 내가 참고 있는 거예요. 내가 행동하지 않는 것이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진실하지 못한 채, 내 마음과 내 삶을 분리시키고 그 상태를 그대로 두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한지이고, 또한 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못한 채 내버려두어 나를 내 삶에서 소외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마음에 걸릴 때,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참지 않는 일 말입니다. 지금 당장의 행동을 참지 않는 일이 아니라, 자꾸만 걸리는 마음을 억눌러버리고 참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도 용기는 이미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용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곧바로 행동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감해서 용감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해서 머리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와중에도 그 마음을 도무지 모르는 척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용감한지도 모른 채 일단 움직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의문을 제시하는 나의 마음부터 움직이게 해주세요.

나약한 우리를 인정하고, 서로의 용기로 있어주세요

‘아니 근데’의 마음이 더욱 자유롭게 활개치기 위해서는 나의 움직임이 작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큰일은 쉽게 하기 어렵고, 결과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내 마음은 다시 무거워집니다. 두려움도, 불안도, 실망도 커지거든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움직일 때, 작고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좋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의외로 많은 선택지가 보입니다.

용기는 일생일대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고, 단 한 명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용기의 필수 조건에는 완벽함이나 성공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용기가 없을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용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 용기의 씨앗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음의 숨이 있습니다. 숨을 언제까지 참을 수는 없거든요. 언젠가 우리는 아주 작고 미약한 숨이라도 내뱉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숙하여도 피어난 그 모습 그대로의 용기를 지켜보며, 또 다음의 기회를 서로에게 허용하며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 용기의 또 다른 씨앗이자 밑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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