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교제가 혼자보다 괴롭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나중에 큰 후회가 남지 않는 것 같다. 혹시 후회스러운 경험을 하더라도 본인의 선택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감당이 된다. 문제는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는데 사회적인 시선이나 편견 때문에 억지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서 생긴다.
‘모두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고 강요하는 일은 반드시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싸우지 않는 상대를 고른다

결혼할 상대를 고르는 기준으로 딱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뭘 택하겠는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재정 상태, 능력, 외모, 가치관 등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 저마다 있겠지만, 내가 첫 번째로 삼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특히 멘탈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기준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은 나와 한창 싸우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그 전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는 상관없다. 당신에게 어떻게 잘해주었든, 다툼이 반복해서 생긴다면 더 이상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어쨌든 가까이에서 당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단 호의로 대할 것

인간관계의 법칙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상 꼭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에게 호의로 대하면 호의가 돌아오고, 악의로 대하면 악의가 돌아온다. 그러니까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호의로 대해야 한다.’

단순한 법칙이지만, 이걸 고려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다툼을 쉽게 만든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상대에게 어디까지 호의로 대해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상대가 악의로 대하는가, 아닌가를 기준 삼으면 된다. 악의로 대하는 사람이라면 호의로 답례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까지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존엄은 이렇게 유지된다.

기본적 인권은 몰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개념은 아이들도 안다. 이 또한 대등의 원리이다.
연쇄 악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볍게 싸움을 시작하지 말 것. 계기를 만들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할 것. 기본 중의 기본인 이 인간관계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정말로 많다.

‘상호 대등 원칙’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수록 자신의 분노나 고집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당연히 싸움도 잘 일어난다. 결혼 상대나 연인은 쉽게 연을 끊기 어려운 관계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이런 상대로 싸움이 너무 쉽게 일어나는 사람을 고름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내밀한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때 역시 이러한 조건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혼자서 행복한 삶도 충분히 좋다

결혼은 그야말로 ‘가정을 이루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회 전반에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던 시대였다. 그런 인생을 동경하면서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최근 눈에 띄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방황하고 싶다. 방황하면서 여유롭게 행복해지고 싶다. 마음 편히 그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것 같다. 당신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을 오롯이 당신이게 하는 것, 하루를 기쁨으로 채우는 것이 있다면 이미 충분히 충만한 인생이다.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협박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해서 도쿄대에 들어갔다. 공부뿐 아니라 운동도 제법 잘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너무 잘했던 것이 지나친 인간관계와 과로를 초래해서 마음을 병들게 한 원인이 되었다. 마음의 병은 이후 오래 계속되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나답지도 않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공부와 운동(아니면 동아리 활동)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을 세뇌당하듯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공부와 운동을 안 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했던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되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내 평생의 후회는 사회가 강요하는 무책임한 인생 조언을 지나치게 믿은 것이었다.

결혼과 연애 등 인생의 모든 수순에 이러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해왔다. 지금은 많이 느슨해진 듯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분위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탓에 지나치게 자신을 억제하는 사람도 많다. 사회가 강요하는 인생 조언은 당신을 위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인생의 방식이란 모두에게 딱 맞는 대량생산 기성복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맞춤옷을 지어 입듯이 살아가야 한다.

함께 살아도 거리를 둔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함께 살지만 너무 가까워지지 않았던 것이 동거를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가보면 우리의 생활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부모님은 하루 종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함께 잠자리에 든다. 마치 두 분이서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바로 그 부분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점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애정도 너무 가까우면 민폐가 된다

여기에는 인간관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진실이 있다. 바로 ‘아무리 애정을 갖고 한 일이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악의로 괴롭히는 것과 같다’라는 사실이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저 사람이 더 잘되길 원하는 마음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 상대방이 움직인다면 그의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 참견을 하지 않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고 조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답답함은 더욱 커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놓는 것이 최선이다. 상대방이 선택한 것이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그의 몫이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이 관계를 위한 최선이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함께 멀리 갈 수 없다

결혼 생활을 갈등 없이 지속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 중의 하나는, 파트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파트너를 잃는다. 자신에게 그날이 언제 올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도, 자립심을 잃으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잊지 말자. 거리를 두지 않으면 함께 멀리 갈 수 없다.

충성보다 자유가 낫다

애초에 도망칠 수 없는 곳은 지옥이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거리를 두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렇게 쉽게 지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성’보다 ‘자유’에 방점이 찍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선택은 달라졌다. 한 회사에 충성을 맹세했던 사원이 이직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택한다. 평생의 해로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다.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지’라는 해묵은 압박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로 돌아가는 이별도 괜찮다

더 이상 당신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지 않는 관계라면 헤어져도 괜찮다. 이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평생 헤어지지 않고 산다면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겠지만, 역시 자연스럽지는 않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별을 절대 실패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던 ‘사람은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싫어진다’라는 원칙을 떠올려보자. 서로 상처 주는 관계를 오래 끌어서 인생 최악의 괴로운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똑같은 갈등이 계속 반복되는 관계는 남은 생을 위해 하루빨리 정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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