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다는 구원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미션은 집이나 회사, 학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는 라디오를 즐겨 듣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라디오를 들으러 내 방으로 향했다. 늦은 밤까지 진행자가 선곡한 음악을 들려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젊은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야 방송이 전성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진행자가 방송하는 시간이면 가족이 모두 잠든 조용한 시간에 볼륨을 낮춰서 듣고는 했다.

나의 진짜 인생은 이 라디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추구해온 것, 표현해온 것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게 집은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라디오는 내가 있을 곳도, 사람도 아니었지만, 또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했다.

서드 플레이스

‘서드 플레이스thirdplace’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정이 제1의 장소, 회사나 학교가 제2의 장소라면 그와는 다른 곳이 바로 제3의 장소, 서드 플레이스다.

사이좋은 가족이라고 해도 집에만 계속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세상과 접해야 숨이 트이고, 각자의 세상을 넓은 시야로 비교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지킬 수 있다. 서드 플레이스가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면,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가족과 평생 떨어져 살아도 괜찮다

가족과 계속 떨어져 살아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오래 떨어져 살았는데 부모의 병간호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러나 함께 지낼 때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계속 따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같이 있어서 즐거웠다면 기회가 될 때 다시 함께 살면 된다. 반면 마음이 잘 맞지도 않을뿐더러 위압적이거나 폭력을 계속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다.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다시 가까이에서 지내는 것이 과연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남은 인생에 좋은 일일까?

사이좋은 가족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모를 봉양하며 같이 산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사이가 나쁜데 병간호 때문에 억지로 같이 살게 된다면 더 큰 불행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에 대한 상식은 아마도 화목한 가정 속에 있는 사람의 시선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아니, 인간관계에 대한 상식 대부분이 그렇다. 사이좋은 가족이라면 그 상태로 아무 문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랫동안 함께 지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기준은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는지 아닌지’다. 그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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