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자신의 좋은 부분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전체라고 생각하고 일일이 비교하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SNS에 누군가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올라온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아, 이게 이 사람이 가진 행복의 단면이구나.’ 어떤 인생이든 좋은 부분만 잘라내서 보여줄 수 있다. 한없이 고되고 불운한 삶일지라도 말이다. 유년 시절 불행하기 짝이 없는 집에서 자란 나도 작정하면 좋은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의 형태를 원하지 않는다면 부러워할 것도, 고집할 것도 없이 포기하면 된다. 수시로 마음을 괴롭히는 가족과 지내면서 줄곧 원망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 가족 없는 자유로운 삶도 그 자체로 편해서 좋고, 원한다면 전혀 다른 형태의 가정을 구성할 수도 있다.
가족이든 아니든, 인간은 가까워질수록 애정이 커질 수도 있지만 싫어하는 감정도 그만큼 커지기 쉽다.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관계를 떠나,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횟수에 비례한다는 얘기다. 이 거리가 가까울수록 ‘싫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반대로 멀어질수록 좋아하는 마음도, 싫어하는 마음도 무감해진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가족이란 어쩌다 보니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같이 있게 된 특수한 관계일 뿐이다.
평생 자식 없이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10년 통계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30퍼센트, 여성의 20퍼센트가 이에 해당했다. 그리고 2035년이 되면 남성은 40퍼센트, 여성은 30퍼센트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0~40퍼센트라는 숫자를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식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출생률 국가인데, 대만, 홍콩, 싱가포르도 비슷한 수준이다. 놀라지 말라. 이 지역들은 모두 2018년 전 세계 출생률 워스트 5위에 들었다. 출생률이 낮기로 유명한 일본은 그보다는 조금 높은 저출생률 19위이다. 유럽 선진국과 미국도 하위권에 슬쩍 끼어 있고, 상위 100위 이내에는 개발도상국밖에 없다. 부유한 국가에서는 점차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이제 상당히 많다. 그러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자식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것 같다. 행복을 결정하는 건 자녀의 유무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가에 달렸다. 아이 없는 삶이 불안하다면 ‘내가 원하는 행복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한번 적어보기 바란다. 그 기준이 거짓 없고 정확하려면, 사회적 압력과 편견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잔혹한 생물이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남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누군가 보고 있는 곳에서는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친구 집단에서도 남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심한 따돌림이 벌어진다.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 전문가도 따돌림의 원인 중 하나로 학교의 폐쇄성을 자주 언급한다.
다른 많은 집단 중에서 가정만큼 쉽게 폐쇄성을 띠는 집단도 없다. 경찰도 가정 내 다툼에는 ‘민사 불개입’이라며 거의 손대지 않는다. 이 또한 폐쇄성을 높이는 원인이다. 가정은 그렇지 않아도 나쁜 일이 발생하기 쉬운 장소다. 가정 내 안전을 지키고 싶다면 무조건 은폐되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좀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가본 적 없는 장소에 가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처음 어떤 집단에 들어가기란 상당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본 뒤에는 큰 변화를 느낀다. 은둔형 외톨이인 자식을 살해한 전직 고위 관료의 가정도, 그리고 내가 자란 우리 집도, 바깥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면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가족은 좋은 가족인가, 나쁜 가족인가?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가족은 너무나 가까운 존재라, 사회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을 볼 때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확대 렌즈를 대고 보듯 가깝게 보여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명백하게 나쁜 부모, 나쁜 형제였다고 해도 지나치게 미워하면 도리어 자기만 피곤해질 뿐이다.
마음을 계속 괴롭게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길 권한다. 한 명, 한 명을 이름으로 떠올려보는 것이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부모에게는 길러준 은혜가 있다’라는 사실이다. 상당히 흔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리를 둬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 지나치게 매이면, 누구나 평생 부모와 대등하게 맞설 수 없다.
‘길러준 은혜’는 차치하고, 우선 대등한 개인으로 생각해보자. 상대방이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경우 ‘부모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나를 키웠다’라는 사고방식이 나의 부모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상하거나 나쁜 방향이 아니라 제대로, 객관적으로 다시 파악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전부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전부 부모 탓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가족 내에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인가 있다. 만약 부모 탓이라 해도 부모를 항상 미워해서는 마음이 편안해질 수 없다. 어느 쪽이 되었든 가족과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증오도 지나치게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족과의 원근감을 바로잡으면 편안해질 수 있다.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집에서 자랐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당신의 부족함이나 결핍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미디어의 허상과 당신의 삶을 견주며 가뜩이나 힘든 삶에 절망할 거리를 하나 더 더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식물에 빠졌던 때는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땐 ‘남자가 꽃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물며 ‘인형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남자가, 심지어 어른이 꺼내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애착의 대상은 어째서 이렇게 남자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들만 있을까? 우리 사회는 지금껏 인형을 좋아하는 어린애 같은 태도는 자립한 개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기준이 한층 더 엄격하게 적용된 대상이 어른, 그리고 남자였다. 그러나 성적소수자가 용인되는 분위기와 더불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더 이상 남자가 남자답지 않아도 된다.
그다음으로 깨뜨려야 할 압박은 ‘어른스러움’이어야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자립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 자란 사람은 타인과 건강한 애착 관계를 만드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거기에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더해지면 더더욱 회피적인 성향이 되고, 비자발적으로 외로운 삶을 살아가기 쉽다.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혈연이 아닌 부부가 차라리 마음이 더 잘 맞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유전자가 비슷한 것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것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 따라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서 특별히 슬퍼할 필요도 없다. 최소한 그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의외의 사실은, 혈연을 중시하는 풍조가 그리 오래된 관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양자를 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면서 ‘자식’이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를 일컫도록 법률로 정해졌고, 친부모가 책임을 갖고 아이를 기르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물론 관행으로 양자도 허용되었지만, 혼외자를 포함해 혈연이 아닌 자식은 조금씩 설 곳을 잃어갔다. 즉, ‘친자’나 ‘피를 나눈 형제’ 같은 관계를 중시하게 된 것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분위기가 한 바퀴 돌아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혈연주의는 상당히 배타적이다. 혈연이 가장 중요한 세상에서는 친부모가 아니면 아이를 좀처럼 접할 수가 없다. 아이와 만나려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상식이 되었다. 모 아니면 도다. ‘도’일 때도 싫지만 ‘모’일 때도 너무 책임이 막중해서 거부감이 든다. 출산율이 매해 더 떨어지는 것도 그 막중한 책임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우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혈연을 중시했다. 그러나 묻고 싶다. 핏줄로 이어져서 뭐가 좋은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부부처럼 부모와 자식도 헤어지거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편이 낫다. 같은 핏줄끼리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금 자기 가족을 바라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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