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유적•유물/약탈 문화재

거의 대부분의 묘가 온전한 모양새를 가지지 않은 참상을 보여주었다.
- 우메하라 스에지

왕릉군 근처에 가면 무수한 묘영이 파헤쳐져 모든 산과 언덕이 벌집처럼 구멍이나 있다.
- 다나카 만소

21세기 초반 강화도와 개성 일대를 돌아본 일본인 고고학자들의 기록이다. 조선침발의 역사는 조선 문화재 수탈과 궤를 같이한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것으로 시작해 열강의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무차별적인 도굴과 약탈이 벌어진다. 특히 일본인들에 의한 문화재 약탈이 심각했는데 조선이 병합되면서 이 경향은 가속화된다. 조선에 파견된 일본인 관료나 총독부의 정책을 통한 합법적인 수탈부터 수집가들의 후원을 받아 한몫 챙기려는 도굴까지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자기를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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