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1482년~1519년)는 조선 전기 중종 때 문신으로, 유교적 개혁 정치를 실천하다 처형당했다.
조광조는 김굉필의 제자고, 김굉필은 김종직의 제자였는데 연산군의 무오사화 당시 유배 중이었다. 용감하게도 조광조는 유배 중인 김굉필을 찾아가서 사사받는다.
조광조는 과거에 합격한 후 조정에 들어가자마자 여론을 주도하면서 중종의 눈에 들었다. 학문적 탁월함, 정치적 이상의 선명성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며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정치력까지 지녔던 것이다. 당시 중종은 연산군이쫓겨난 후 사실상 반강제로 국왕이 됐기 때문에 여러 공신 세력에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중종은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적극 등용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고, 조광조 역시 중종을 통해 유교적 이상 사회를 만들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