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인물/김대중

정치가이자 15대 대통령, 김대중(1924년~2009년)의 별명은 ‘인동초‘다. 인동초는 겨울을 이겨내는 꽃으로 유명한데, 오랜 기간 독재 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큰 고난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낙선,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의원직 상실 등 어려움을 겪으며 국회에 입성한 김대중은 1960년대 가장 탁월한 역량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뛰어난 연설 능력과 합리적인 정책 제시 등 그 유능함을 널리 인정받았다. 1971년40대 기수론에 동참하여 결국 당내 경선에서 김영삼을 이긴 후 대통령 후보가 돼 박정희와 자웅을 겨루었다. 당시 박정희는 집권 연장을 위해 3선 개헌을 단행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집권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김대중은 대중경제론, 4대국안보론 등을 주장하며 박정희의 경제 성장과 반공주의에 대해 분배 경제와 주변국 참여에 기반한 남북 교류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불행은 이때부터 연이어진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며 미국, 일본 등지에서 반독재 투쟁을 하다 중앙정보부에 납치당해 현해탄에서 수장당할 뻔 했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고, 유신 체제 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0년에는 신군부에 의해 ‘내란 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 미국으로 강제 망명 생활에 나선다. 1985년 귀국하여 6월 항쟁의 불쏘시개가 됐으나 1988년에는 김영삼과 함께 출마하여 또 낙선한다. 1992년에는 3당 합당에 성공한 김영삼과 대결하여 또 다시 낙선했으나 1997년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과 야권단일화에 성공하는 등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대통령이 된다.

김대중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7년 대통령 당선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고, 햇볕정책을 주창하며 남북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최초로 평양에 방문하여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이끌어냈고 그로 인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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