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명문장/상인에 관하여

중국 사람들은 가난하면 상인이 되는데 참으로 현명한 생각이다. 그래서 그사람의 풍류와 명예는 그대로 인정된다. 유생들은 직접 책방에 가서 책을 산다. 재상들도 가끔은 융복사 근처 시장에 직접 가서 골동품을 사기도 한다. 나는 지체 높은 사람이 융복사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신분으로 시장에 출입하면 모두들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이 아니다. 청나라의 이런 풍속은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벌써 명, 송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겉치레만 알고 고개를 저으며 꺼려하는 일이 너무 많다. 사대부는 놀고먹을 뿐 하는 일이라곤 없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대부가 들에서 농사를 지으면 알아주는 자가 없다. 사대부는 짧은 바지에 대나무로 만든 갓을 쓰고 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 또 자와 먹통, 칼과 끌 등을 가지고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그를 부끄러워하고 우습게 여기며, 그의 혼인길마저 끊어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집에 돈 한 푼이 없어도 높다란 갓에 넓은 소매가 달린 옷으로 치장하고 어슬렁거리며 큰소리만 치는 것이다.
-박제가,<북학의>중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1750년~1805년)가 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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