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명문장/심리록

대저 시골이란 양반과 상민을 구분할 것 없이 정숙한 여자가 포악한 자들에게욕을 당하거나 나물을 캐다가 한번 끌려가기라도 하면 갑자기 바람을 피운다고 손가락질을 받아 온갖 오명을 쓰게 된다.
그러면 강간을 당했든 안 당했든 간에 바람을 피웠다는 모함은 자신이 죽을때까지 씻기 어려운 것이라서 방 안에서 목을 매 자결하기로 맹세하게 되니, 그 일은 어둠에 묻혀 밝혀지지 않고 그 심정은 잔인하고도 비장하다.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호소해봤자 더러는 눈물을 훔치며 방문을 나서고, 더러는 남 보듯 하면서 다른 데로 가버리니, 적적한 빈 방에서 수치와 분노가가슴속에 교차되어 구차하게 살아보려 하여도 참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사형 죄수에 대한 판례집인 《심리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