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국군 최초의 해외 파병으로, 베트남 전쟁은 동아시아 반공 전쟁의 일환이자 외화벌이 전쟁이기도 했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군이 이 지역을 관할했는데, 전쟁이 끝나자 다시 프랑스 군대가 들어온 것이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했고 프랑스에 맞서 전쟁을 벌였다. 이를 제1차 베트남 전쟁이라고 한다. 결국 북베트남을 이끌던 호치민이 디엔비엔푸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후 프랑스는 쫓겨나고 만다. 북베트남의 승리는 미국에게 큰 위협이었다. 동북아시아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공산주의가 확산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4년부터 미국은 남베트남 일대에 군대를 파견했고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다.
실제로 전쟁은 많은 경제적 윤택함을 불러왔다. 참전 군인의 월급과 미국산TV, 카메라, 선풍기, 카세트 등이 귀국 장병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군인은 물론 2만 4천 명에 달하는 민간인 기술자들도 베트남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서 일했고 한진 같은 물류회사는 이때 재벌로 성장한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1억 달리 이상의 사업 실적을 올렸으니 말이다.
베트남 전쟁은 긍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명분 없는 전쟁이었고 육군 중심의 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민간인 대상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참천군인들은 작전 지역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력, 강간, 학살 등 각종 범죄를 저질랐다. 주둔 지역에서는 ‘라이따이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이따이한‘은 한국민들이 현지 여성과 낳은 아이들을 말하는데, 종전이 되자 무책임하게 여성과 자녀를 버리고 온 것이다. 이 밖에도 고엽제 살포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참전용사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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