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첩은 초기에는 납속책의 일환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한 재정 문제를 자발적 기부를 통해 해결하고 그 대가로 관직을 하사하는 제도로 운영됐다. 일종의 명예직으로, 실제 관료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돈으로 관직을 사는 방식자체가 일종의 신분 상승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붕당 정치로 인해 향반, 잔반으로 불리는 몰락한 양반이 나타났고 농사로 크게 성공한 부농들이 등장하면서 신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제력을 이용해 공명첩을 구입하며 일종의 신분 세탁에 나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