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명문장/시일야방성대곡

지난번 이토 히로부미 후작이 한국에 왔을 때 어리석은 우리 백성들이 앞다퉈서로 이렇게 말했다.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이 세 발 달린 솔처럼 안정을 유지하도록 책임지고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이다. 오늘 내한한 것은 반드시 우리나라의 독립을공고하게 기반에 올려놓을 책략을 권고하려고 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원과 백성, 윗사람 아랫사람이 모두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의 일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많도다. 꿈에도 까마득히 생각하지 못한 오개 조약(을사조약)이 어디로부터 제출됐는가?
(...)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강경한 의지로 거절하기를 그만두지 않으셨으니 (...) 아! 저 개돼지만도 못한 이른바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것들은 영달과 이익을 바라고 공갈을 빙자한 위협에 겁먹어 우물쭈물 벌벌 떨면서 나라를팔아먹는 도적이 됐다).
(...) 오호라! 원통하도다! 오호라! 분하도다! 우리 이천만 남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사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갑작스레 멸망하고 말았는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 중

다만 내용에 중요한 오류가 있다. 을사조약을 강요할 당시 고종 역시 우물쭈물하면서 대신들에게 책임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완용과 을사오적만을 탓하며 고종이 면피되는 현실은 이러한 오보 때문이기도 하다. 또 민족정신을 단군뿐 아니라 기자에게서 찾는 것도 오늘의 입장에서는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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