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의 반대 개념을 편애하는 현상이 은연중에 퍼지는 것이 해악을 끼친다고 보는 이유는 자기 변형self-transformation이 가능하다고 설파해서가 아니다(자기 변형은 당연히 가능하며 매일 일어난다). 자기 변형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항상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만둘 때라는 걸 알고 있다. 어떤 상황이 옳지 않다고 느껴지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만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여느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 전략이다. 포기자로 불리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신체적·정신적 피해에서 자신을 지키지 않고 그냥 두면 안 된다. 그러니 그만두자.

유사 그만두기는 ‘조용한 그만두기’와 다르다. 2022년 가을부터 유행한 조용한 그만두기는 ‘해고당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일만 하는 것’이다.[ 2 ] 유사 그만두기는 책임자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게으름 부리고 꾀를 피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하는 것이다.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 행위다. 유사 그만두기의 원동력은 무관심이 아니라 민첩함과 통찰력이다.

배려심 있고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며 그만둘 수 있다. 이런 식의 퀴팅은 절묘한 차이를 만드는, 섬세함이 깃든 행위일 수 있다. 찰스 다윈이 그랬듯, 서서히 깨달아 차츰 변화하고 품위를 잃지 않은 채로 협상하여 영리하게 전환하는 행위일 수 있다.

퀴팅이 예 또는 아니오, 그대로 머물거나 떠나거나, 지금 당장 아니면 다시는 시도조차 못 함, 이런 식으로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 그만둔다고 해서 꼭 모든 것을 폭파하고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고 말끔히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을 조정해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변화를 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견고하고, 단번에 그만두는 것만큼 큰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퀴팅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둔다고 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중단할 필요는 없다. 퀴팅은 망설이는 행위일 수도 있고, 새로운 목표(이전 목표와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를 좇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기간일 수도 있으며, 잠시 멈추어 서서 방향을 전환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것이 확신이 들지 않아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일의 깊이, 삶의 가치, 금전적 보상 모두 만족스러운 직업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버릴 필요는 없다. 깊이 생각해서 옆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사 그만두기를 통해 여러분은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삶에 어떤 선택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 이는 선물받을 자격이 있다고 다른 사람이 정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재도전에 스스로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목적 없이 진행되는 창의적인 일, 빙 둘러 갔을 때 얻는 보상과 같이 직선과는 거리가 먼 유사 그만두기 전략이 주는 이득을 학생들이 놓치고 있었다고 그레이는 말한다.

테라노스의 몰락은 재계에서 도덕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오만과 탐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우화이자, 홈스를 비방하는 사람들 쪽에서는 사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우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명예의 전당 첫 번째 전시관에 전시될 만하다.

첫 번째 장애물은 두려움이고, 두 번째는 매몰비용의 오류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만둬야 함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치고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미루고 변명한다. 그래서 겁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떠올렸을 뿐이다. 새뮤얼 스마일스가 전한 미심쩍은 지혜를 골똘히 생각했을 뿐이다.

퀴팅에는 위험이 따른다. 완벽하지 않은 일을 떠나 더 나은 일을 찾으려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믿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결국 이상적인 일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두려움을 인정하고 이겨내야 한다. 삶이 대체로 그렇듯 흐릿한 혼란과 골치 아픈 난장판 속에서 밝은 길이 또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두려움은 당연하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지극히 이성적인 반응이다. 일을 그만두면 일시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소속감을 잃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그만둔다는 것은 꿈에 작별을 고한다는 뜻이다.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지 못하게 막는 두려움은 돈이나 동료애, 지위나 야망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불운이 닥치고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믿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낙관주의를 기르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무언가를 꿈꾸거나 바보처럼 마냥 해맑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분별 있고 솔직하게 얻은 낙관주의, 그만둠으로써 불이 붙는 낙관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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