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3일에 좌우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사건은 1년 전인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식 참석자들이 가두 행진을 하는데 관덕정 광장을 지나던 중 6세의 어린이가 기마 경관의 말굽에 치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마 경관은 그대로 지나치려 했고 격분한 민중들은 경관에 달려들었다. 이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죽는다. 제주교 6학년 허두용, 젖먹이 아이를 앉고 있던 21세 여성인 박재옥 등이 죽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등에 총을 맞고 죽었다.
경찰의 과잉 행동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제주도 전역에서 광범위한 파업이 일어났고 경찰 중 일부도 파업에 가담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강경하게 대응했으며 파업에 동참한 도민 중 일부를 고문했다. 이후 벌금, 징역, 파면 등이 이어졌는데 무려 2,500명이 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