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제 당신을 다시 보려면
지난봄,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갔습니다.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가도
당신의 소식은 없었습니다.
기나긴 겨울에도 당신의 봄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봄이 오면 당신을 볼 수 있겠지요.
이제 그 꿈을 빼앗겼습니다.
당신을기다리는 고통도 이제 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차라리 당신 곁에 눕고 싶습니다.
고문에 으스러진 당신 손을 꼭 꼭 미소로 붙잡고
차라리 당신 곁에 놓고 싶습니다.
평화로이, 평화로이, 그리고 조용히
인혁당 사건 당시 남편을 잃은 아내의 수기다. 1974년, 공산 단체 계열의 불법 단체인 인민혁명당과 재일조총련을 비롯한 여타의 국내 좌파들이 연대하여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는 ‘인혁당재건위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8인이 사형 선고를 받는데, 4월 8일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바로 다음 날 형을 집행했다. 세계 사법 역사상으로도 규탄받는 이사건은, 이후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중앙정보부의 조작임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