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은 오랜 시간 동안 차분하게 모든 걸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시점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성실의 움직임은 거침없고 일사불란했다. 머릿속에서 이미 수백 번 시뮬레이션해 둔 덕이었다.

성실은 평온하게 컨테이너를 걸어 나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까지 완벽하게 걸었다. 민규의 욕이 계속됐지만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올 가능성은 없다는 걸, 성실은 오래전 그날의 경험으로 알았다.
김민규 교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문제가 생겨 죽거나, 성실이 원하던 대로 자신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기력에 점철되어 그 마음 때문에라도 죽게 될 것이다.
성실은 기왕이면 후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서둘러 움직였다.

준비했던 계획의1구간을 마쳤다. 아직 끝은 아니었지만 가장 어렵고 물리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는 구간이 마무리된 거였다.

성실이 눈을 떠 확인한 시간은7시27분. 곧바로 민규의 휴대폰으로 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연희의 휴대폰 벨 소리가 전화기 너머가 아닌 성실이 있는 공간에서 울렸다. 소리는 성실이 마주한 캐비닛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란 성실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캐비닛에 다가갔다. 조심스레 문을 당겨 열자,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연희가 막 잠에서 깬 듯 고개를 들어 성실을 봤다. 성실 또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스쳤다. 지금 연희가 이곳에 있다는 건, 어제저녁 그 시간에도 여기에 있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성실이 민규를 쓰러뜨리고 납치하는 모든 과정을 연희가 봤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성실의 눈빛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만큼 흔들렸다.

자신의 선(善)을 유지하게 해 주면서 필요한 악(惡)이 되어 준 게 성실이었다는 걸, 한경은 진즉 깨달았다. 성실이 더 현실적이었고 영리했으며 목표 달성에 있어서도 뛰어났다. 한경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선택하지 않을 방식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조건을 무시한 채 성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방금의 간접적인 협박도 사실은 암묵적인 거래의 제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성실은 여전히 한경을 지켜보고 있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증명이자, 한경이 위협적인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
그러니 한경도 이번만큼은 확실히 도울 생각이었다. 김 교수와의 승부에서 성실이 최후까지 승리하도록.
어느새 경찰서 출입구에 다다랐다. 한경은 그대로 반듯하게 서서 숨을 차분히 들이마셨다. 그것을 머금은 채 결전장으로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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