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우리 안의 기준이
흔들릴 때 필요한 힘

공감은 때론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때론 상대방이 자신과 얼마나 친밀한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뿐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문화적 판단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성은 공감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구원투수

부정적 감정에 무릎을 꿇거나 편파적으로 작동하는 공감을 보완하는 구원투수는 ‘이성’이다. 이성은 정서를 보정해 보편적 규범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성이라는 말은 다소 무겁고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 본성은 간단하다. 이성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이다.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이성은 경고음을 울린다

이성은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인간의 능력이다. 영어로는 이성과 이유가 모두 ‘reason’을 쓴다. 이유와 이성이 같은 단어로 표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정당하다고 검증된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이성이다. 다시 말해 의미의 원천이 같기 때문에 이성과 이유는 영어에서는 같은 단어로 표기된다.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이성은 내부적으로 장착한 일반성을 통해 마음에 경고음을 울린다.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자유’다.

한 사람의 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외부의 간섭과 장애가 없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자유, 자기 통제와 자기 결정이 포함된 자유. 이것을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10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율과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다.
인간다움은 적극적 의미의 자유, 즉 자율을 포함한다. 사람답기 위해서는 이웃을 나와 같은 귀한 존재로 여겨야 하며, 이 마음이 외부의 통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자발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적극적 자유, 자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소극적 자유가 인간다움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소극적 자유가 없다면, 즉 외적인 장애에 부딪혀 내가 원하는 행위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자율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공허한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소극적 자유도 자율을 위해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자유는 장애가 없다는 정도의 소극적 자유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 더 두터운 의미의 적극적 자유(자율)를 포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공감이 빠지면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의식 자체가 시작되기 어렵다. 그러나 공감만으로는 모든 인격체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기에 이성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때 이성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 공동체 규범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개인 스스로가 자율적 성찰을 통해 이성을 발현함으로써 공존의 윤리에 도달해야 한다. 인간다움은 그럴 때만 이루어진다.

이성이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성이 인류의 자산으로 주어진 것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차별을 수용하지 않는 장치로 발전되어 주변의 모든 이웃이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식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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