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진 게 많으면 남과 비교도 안 하고 자긍심이 생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비교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 중에는 자기중심을 잡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떳떳한 삶을 살아낸 분이 참 많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아요.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던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일 수는 없어요.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고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없으면 진정한 인싸가 되지 못합니다. 손에 쥔 것이 없어지면 전부 사라질 인기고 인연인 것이죠.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존재를 긍정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이 생겨요. 그렇게 생겨난 자긍심은 물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긍심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처받지 않을 힘이자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인류 역사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는 일입니다. 제각기 다른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할 과정인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나의 이익,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세요. 문제를 제기하세요. 다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과연 옳은지, 역사나 인류의 발전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지는 반드시 짚어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도 해야 하고요.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내가 속한 집단의 편에 서는 대신에 말입니다.

나의 뜨거움이 많은 사람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사하는 의미 있는 것이라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향하는 곳으로 힘을 더하는 일이라면 더욱 온도를 높여 뛰어야 하죠. 필요에 따라 더 차가워질 수도 반대로 더 뜨거워질 수도 있도록 의지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저는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고조선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열고 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려고 한 거예요. 반만년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대한민국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들에게 조국은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백성에서 시민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사람들이 일제의 폭압에 항일운동으로 맞섰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위험에 무엇으로 맞설 수 있을까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선거 참여겠죠. 시민의식이 다른 게 아닙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정신, 법과 도덕을 준수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태도를 이릅니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한다면, 권리만 찾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시민사회가 탄생한 지 100년. 이제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제가 가르치고 공부하는 과목이 역사다 보니 가끔 이런 오해를 받습니다. ‘고지식하고 미련할 것 같다.’ 스스로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 말해주는 것을 보면 저보다 ‘역사’라는 과목이 주는 편견에서 시작한 오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역사야말로 오늘 내가 잘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나 자신을 공부하고, 나아가 타인을 공부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 세상을 공부하는 일이죠

역사를 공부하고, 나이를 먹으며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저는 제가 사람과 관계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의 생각이 오만이고 건방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어요. 어떤 사람과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그날 깨달았습니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그때의 경험이 더 생생해집니다.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의 일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더라고요. 그의 인생 전체를 봐야 하는 거죠.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제가 소홀하게 여겼던 관계가 저를 지켜준 것입니다. 이들이 저를 열정적으로 보호해준 덕분에 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서로 마주하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한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던 거죠.
생각해보면 제가 역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 역시 면대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자료를 통해 만나는 관계입니다.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성장했다고 자부하면서 왜 그때는 온라인 관계를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저 10년 전 이름 모를 수많은 제자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몇 번 수업을 하고 나니 학생들이 수강 후기도 보내왔습니다. 그때 받았던 수강 후기 중 하나인데 꽤 오래전이라 제 기억을 더듬어 소개해봅니다.
"선생님, 저는 사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시골 낙도에 살아요. 저도 대학에 가고 싶어요.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처럼 사교육도 받고 싶지만 여러 형편이 안 돼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선생님만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에 나왔다고 우쭐대던 제가 얼마나 초라해 보였는지……. 그 학생의 간절한 바람이 지금까지 제가 20년 넘게 무료 강의를 하도록 이끌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때 ‘내 강의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듣는 무료 강의가 아니라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무료 강의로 만들겠다’는 제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제 인생은 과거 역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현재 그러나 곧 역사가 될 시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했는데 제 인생 역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가 봅니다. 저를 여기까지 성장시켜주신 저의 모든 ‘사람’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맺을 여러분과 함께 또 한 번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삶에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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